서울과 인천, 경기도

가양동 성황당

1-4.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성황당

윤상열 선생님의 설문지


영등포구 가양동의 양천국민학교에 근무하시는 37세 윤상열 선생님은 마을제당 설문지를 들고 마을 뒷산에 있는 궁산으로 향했습니다. 궁산은 양천향교 뒷산으로, 그곳에는 성황사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궁산이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산에 위치한 마을제당은 독특한 경우였습니다. 윤상열 선생님은 성황사의 모습을 스케치하여 설문지에 첨부해 주셨습니다.

가양동 성황사 삽화


윤상열 선생님의 삽화를 통해 당시 성황사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궁산에 산성터가 있으며, 그 안에 성황사가 있다는 점입니다. 윤상열 선생님이 조사한 가양동 성황사는 2평 남짓의 기와 건물로, 성황당 할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제의 절차는 우선 제의 전 목욕을 하고, 산신제와 성황제를 함께 진행합니다. 산신제는 별도로 제상을 자려 먼저 지내며, 성황제는 성황당 안에서 진행합니다.

가양동 성황당 우측


제의가 끝난 후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음복을 합니다. 제의 날짜는 다른 제의와 다르게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진행하며, 제의 시간도 보통 밤에 진행하는 다른 제의와 달리 낮 13시부터 14시까지 진행합니다. 제비는 돈 대신, 백미 한 되씩 갹출하여 충당하고 있습니다.

가양동 성황당 문과 현판


윤상열 선생님은 가양동 성황당의 위치 변천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기록하셨습니다. 6.25전쟁 이전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궁산의 남쪽 산기슭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일본 신사가 있던 자리에 기와 건물을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제의 시간 역시 전쟁 전에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밤에 진행하였으나, 전쟁 후에 낮에 제의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제의는 마을주민들이 먼저 지내고 그 이후에 가양동 동민들이 지낸다고 합니다.

가양동 성황당 정면


윤상열 선생님의 조사 이후 2023년 국립민속박물관은 가양동 성황당을 찾았습니다. 그 사이 가양동을 포함하고 있던 영등포구는 세분화되었고, 가양동은 강서구 소속의 행정동이 되었습니다. 우리관은 지하철을 타고 양천향교역에서 내렸습니다. 양천향교역에서 10분쯤 걸어가니 궁산이 나왔습니다. 궁산은 약 고도 74m의 작은 산이기 때문에 성황당을 찾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양동 성황당 안내판


현재의 성황당은 2005년 개축된 건물로, 양천역사보존회와 가양동의 노인정 등이 중심으로 개축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제의는 󰡔치성비요(致誠備要)󰡕라는 서적을 바탕으로 진행하였습니다. 1921년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에는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기 전에 무녀를 써서 빌었다.’는 부분이 있어, 제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