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마이랑 난 집에 가만히 있는거를 못해. 집에만 있으면 뭘 하나, 심심허기만 하지.나문관 그만두고 도면에서 나무 심는 일하는 것도 하면서 돈도 벌고, 바람도 쐬고 하면서 살았지.지금도 물 때 맞으면 갯바닥 가서 낙지잡고, 갱구따고, 쉬모 긁고 해.
-김재옥 인터뷰
조사팀은 김재옥·노숙자 부부가 연평도로 피난 온 이후부터 현재까지 정착해서 살아온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부부는 다른 피난민이 그랬듯이 낯선 연평도에서 아무런 기반 없이 갖은 고생과 온갖 노력을 통해서 가족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연평도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김재옥·노숙자 부부는 집에 들인 살림살이는 잘 버리지 않고 따로 보관한다. 이는 빈손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몸에 밴 검소함이 가장 크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평도라는 지리적 특징도 있다. 연평도는 인천에서 뱃길로 120㎞ 떨어진 섬으로서 육지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물자의 운송이 쉽지 않다. 조사팀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1970년대 인천과 연평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1주일에 1회에 불과했고, 이동에 걸리는 시간도 10시간가량 소요되었다. 그나마 조기잡이가 활황이던 1960년대까지는 섬 안에 다양한 종류의 상점이 있었지만, 조기잡이가 쇠퇴하면서 상점 대부분이 폐업을 하였다. 이러한 특성으로 김재옥·노숙자 부부는 한 번 살림을 구입하면 오래도록 사용하며, 고장이 나면 수리해서 사용한다.
필요한 물건을 제때 구입하기 힘든 상황에서 김재옥은 평소 창고에 모아둔 재료를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서 사용한다. 어린 시절부터 뱃일을 시작해서 따로 기술을 배우지는 못 했지만 타고난 손재주가 좋았고, 지금도 취미 삼아 장식용 지게를 손수 깎을 만큼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안 곳곳에는 김재옥의 손길이 닿은 살림살이가 있으며, 지금도 유용하게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