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준, 세계 인구의 약 3%에 이르는 2억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가 힘이 없던 시절 이역만리 타국 땅으로 끌려간 강제 이주부터, 먹고 살기 힘든 열악한 경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택한 ‘드림형 이주’, 그리고 더 낫고 윤택한 삶을 꿈꾸며 새로운 가치에 투자하기 위한 최근의 신 이주까지, 우리의 이주 역사는 150년을 넘어서고 있으며 181개 국가에 720만 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각지로 이주한 연유와 시기가 다르고 지역도 다르다.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그 마음은 같을 수 있으나 이를 제외하고는 큰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다. 이렇듯 이주 배경이 다르고 시간적 공간적 문화적으로 간극이 있는 세계 각지의 한인들을 민족적 뿌리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설명할 수는 없다. 이것이 재외동포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지역별, 이주 특징별로 동포 사회를 구분하여 연차적으로 접근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정부는 한민족공동체 수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인프라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국외에 거주하는 동포 사회를 끌어안고 더 나이가 그들을 잠재적 국가자산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계획에 의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복수국적 허용을 확대하고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재외동포 차세대들의 건강한 정체성 확립을 위한 각종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차원의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재외동포와 함께하는 한민족공동체의식을 갖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이주 동포들의 희로애락 흥망성쇠가 담긴 ‘한민족 이주생활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재외동포와 관련한 사업들은 주로 후세대들을 중심으로 하는 모국어(한글) 학습과 뿌리 찾기 류의 사업이 대부분이다. 이에 국립민속박물관은 한민족공동체정체성 이해를 목적으로 재외 한인동포의 생활문화에 대한 조사 연구를 단계적 심층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2016년 현재 이주 1세대들은 사망한 경우가 많고, 생존해 있더라도 대부분이 고령이다. 1세대의 생애를 기억하고, 그 삶의 궤적까지 상당부분 닮아 있는 이주 2세대 역시 적지 않은 나이임을 감안할 때, 한민족 이주생활사 집성은 시급성이 요구되는 과제이다.
조사팀은 조사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재외 동포 다수 거주 상위 30개 국가를 대상으로 3개의 기준을 마련하여 구분, 지역을 선정하였다. 그 첫 번째는 시급성을 요하는 지역으로 러시아 연해주와 CIS 지역, 중국, 그리고 일본이다. 두 번째는 이른바 ‘신 이주’라고 할 수 있는, 한민족의 새로운 이주 형태를 기록할 수 있는 지역인 아랍(UAE 등), 남미, 그리고 동남아와 호주 등을 선정하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미국과 유럽 지역을 선정하였는데 이는 이주 1세대부터의 이주사를 모두 담아낼 수 있고, 장기간 세거하여 독자적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기에 이주 생활문화 전반을 기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중 조사팀은 2016년 재외 한인동포 생활문화 조사지로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를 선정하였다. 이곳은 1860년대부터 이루어진 만주·연해주로의 한민족 초기 이주지이며, 국가가 힘이 없던 시절인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1956년 거주이전 제한 철폐, 1991년 소련 해체 등의 사건 때 연해주로 재이주를 한 러시아 동포, ‘고려인’들의 질곡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의 이주 1세대는 대부분 고인이 되었지만, 1920년대 초반에 부모와 함께 이주해온 일부 고려인들은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제 이주 열차를 타고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1세대, 중앙아시아에서 출생하여 성장하고 살다가 다시 선조의 고향인 연해주로 재이주를 한 2, 3세대. 그리고 러시아가 고국이라고 생각하는 최근의 후세대들까지, 그들의 타향살이 160여년의 이야기와 현재를 살아가는 생활문화의 양상을 담아낼 수 있는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재외동포 ‘고려인’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 ‘고려인의 목소리’를 담아내기로 하였다.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지 작성을 위하여 조사팀은 총2차례에 걸쳐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하였다. 1차 현지조사는(2015년 7월 14일~7월 22일) 8박 9일간 진행하였는데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를 찾아 2016년 하반기 예정인 ‘아리랑 전시’ 업무 협의를 하였고, 2차 본 조사를 위한 현황 파악과 제보자 섭외 등의 준비 작업을 수행하고 이주 2세대 고려인들에 대한 면담 조사를 실시하였다. 2차 현지조사는 2015년 10월 20일부터 11월23일까지 35일간 진행하였다. 2차 조사에서는 고려인 민족지 작성을 위한 면담 조사를 주로 진행하였는데, 이주 생활사 집성을 위한 자료 수집을 하였고 세대별 생애사 기록을 하였으며 고려인 관련 기관, 단체 등을 방문하여 자료를 확보하였다. 현지조사를 진행하며 90세 이상의 고려인 노인 분들을 만나 직접 경험한 1937년 강제 이주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었으며, 이삼십 대의 젊은 고려인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 조사할 수 있었다. 환갑잔치와 결혼식을 찾아가 약 160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고려인의 전통 풍습을 살펴 볼 수 있었으며,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한 의례의 양상도 기록할 수 있었다. 면담 조사를 진행하며 많은 고려인들의 성에 김가이, 고가이, 오가이 이런 식으로 ‘가이’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물어봤더니 이는 1937년 강제 이주 후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사람이 성을 물어봤을 때, “나 김가요.” “고가요.” “오가요.” 라고 말했던 것을 ‘김가이’라고 잘 못 받아 적어서 그렇다며 웃기고도 슬픈 연유라고 답해주었다. 아리랑 조사를 할 때에 노래를 앉아서 편하게 불러달라고 했다가 혼나기도 하였다. “어디 고향 노래를 앉아서 부르냐.”며 호통을 치곤 아리랑 완창을 한 후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80대 이상의 고려인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친이 일찍 사망하여 본인과 같은 성씨를 만난 적이 없던 한 고려인 할머니는 조사자가 같은 성씨라는 것을 알고, 한 동안 손을 잡고 우리 가족이라며 꼭 집으로 놀러오라고 초대를 해주었다. 이후 면담 조사를 위해 집을 찾았을 때 증편, 찰떡, 김치, 밥, 북짜이(고기 육수에 된장을 풀어 끓인 국), 순대 등등 고려음식을 손수 차려 주기도 하였다. 조사팀이 만난 2015년 러시아 우수리스크 재외동포, 고려인들은 저마다의 아픈 역사를 가진 채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나름의 방식으로 전승해가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한 소수민족으로서 타민족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또한 세월의 흐름 속에 자연히 흐려지는 ‘고려인’의 색체를 인식하고 그것 그대로 인정을 하면서도 ‘민족적 고향·고국’의 최소한의 문화와 언어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사팀은 이러한 2015년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사회,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