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촌스러움과 익숙함
사람들은 지난날의 과거를 회상(回想)하고, 추억을 통해 깊은 생각을 한다. 누구나 학창시절이나, 어릴 적의 기억을 통해 행복했던 그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기를 원한다.
추억을 남길 때, 사람들은 세련됨을 열망한다. 뭔가 반듯하고, 각이 세워진, 쿨하고, 모던하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주변에는 온통 세련되고, 독특한 것들로 넘쳐난다. 바야흐로 스마트한 세상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그러한 세련됨을 수수하고, 익숙하면서도 정감 있고, 그러면서도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으로 변화하게 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름에 세련된 맛이 없이 엉성하고 어색한 데가 있어 촌스러워지지만 그것을 더 좋아한다. 그것이 바로 ‘사진’이다. 익숙한, 너무 익숙하다보니 있는 듯 없는 듯한, 가끔씩 볼 때 촌스럽지만 미소 짓게 하는 것이 벽에 걸리거나 진열장 위에 있는 사진들이다.
첫 번째 액자 가족 사진
집안 거실이나 안방에 걸려있는 사진들 가운데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이들 가족사진에는 핵가족화 된 두 부부와 자녀들만 있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제 갓 태어난 손자, 손녀가 함께 한 ‘대가족’이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며느리가 함께 하기도 한다.
가족은 부부 관계를 기초로 하여, 가까운 살붙이가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작은 집단이다.
현대 사회는 생활이 복잡해지고 기능들이 나누어지면서 가족 형태도 핵가족으로 변했다. 가족간의 역할도 변했고 가정 안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일들이 가정 밖으로 분화되어갔다. 그래도 부대끼며 사는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말처럼 살가운 말이 있을까? 아무리 서운한 일이 있어도, 설령 잘못한 일이 있어도 가족끼리는 애정으로 용서되곤 한다. 가족끼리는 거짓말도 일상으로 통한다. 부모는 무슨 문제가 생겨도 자식들에게는 “우리는 편히 잘 지낸다. 걱정하지 말고 너희들 건강이나 챙기거라.”고 한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가족은 물 같고 공기 같아서 함께 살면 그 존재를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한 명이라도 떠나가면 나머지 식구들은 허전함을 달래지 못한다. 그것이 가족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이 공동운명체는 시공을 초월해 언제나 가족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된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가족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가족사진’은 있는 듯 없는 듯 집안 어딘가에 걸려있거나 세워져 있지만, 그 존재를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가끔 지나치듯 생각날 때 쳐다보면, ‘지금 우리 가족은 어디에 어떻게 서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허명(虛名)으로 쓰러져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서로를 붙들어 매면서 가족의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가족해체를 걱정하는 세대에 가족의 의미가 되레 절실해지는 요즘 집안에 걸린 가족사진에는‘함께해서’즐거움과 따뜻함이 묻어난다.
두 번째 액자 아기 사진
집안에 걸린 사진 가운데 갓 태어난 손주를 안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있다. 혼인한 부부에 있어서 출산은 가정 내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한가지다. 혼인하여 3년 정도가 지나도록 임신 소식이 없으면 걱정이 앞서고, 아기를 낳고자 노력을 하게 된다.
전통시대에 임신은 삼신(三神)이 돌봐 주어야 한다고 했다. 출산한 집에 가서 삼신께 바친 첫국밥을 산모보다 먼저 먹기도 하는 등 아기를 낳은 산모와 관련한 것에 삼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아기’는 삼신할머니의 보호를 받는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로 여겼으며, “아기는 열 살까지 삼신이 돌본다.”라는 말도 생겼다.
현대의 출산은 대부분 병원에서 이루어지기에 전통사회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기를 맞이하는 보람과 기쁨, 소중함은 여전하다. 집안에서 태어난 아기를 맞이하는 가족들의 그러한 마음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 번째 액자 돌 사진
태어난 지 일 년 되는 첫 생일인 돌에는 친지와 이웃들을 초청하여 돌상을 차리고 잔치를 연다. 돌상에는 연필, 돈, 실 등을 올려놓고 하나를 잡게 하는 ‘돌잡이’를 하고, 주인공인 아이에게 덕담을 해주며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한다.
현대의 돌은 대부분 전문 뷔페에서 치른다. 그리고 돌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돌에 이르기까지 성장 과정을 담고, 그 사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보내진다. 시골에 거처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손주들 돌 사진이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주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들을 이 곳 저 곳에 두고, 누군가 방문하면 저 아이가 몇 째네 누구이고,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자랑하며 흐뭇해하신다.
네 번째 액자 졸업 사진
전통사회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남자 아이는 관례(冠禮)를 행하였다. 그리고는 그 때부터 한 사람의 성인으로 대우하였다. 한편, 여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주는 의식으로서 계례(?禮)를 행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졸업식이 관례와 계례를 대신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졸업식을 거행한다.
졸업식을 앞두고 졸업사진을 찍는 것은 일상적이다. 네모진 사각의 액자에 사각모를 쓴 주인공이 자리한다. 친구 동료들과 함께 한 사진들을 모아 졸업앨범으로 따로 만들기도 한다. 또한 졸업식이 끝나면 운동장이나 예식을 거행한 건물 주변에서 졸업식의 주인공과 그를 찾아온 가족, 친지들이 꽃다발과 선물 등을 건네받으며 사진을 찍는다. 이러한 모습은 졸업식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졸업 사진을 걸어놓고 단계마다 매듭을 짓고 더 높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가족의 성장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다섯 번째 액자 결혼 사진
혼례는 남녀가 만나 새롭게 한 가정을 꾸림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어른으로 변하는 단계이다. 그렇기에 여타의 예식에 비해 절차도 복잡할 뿐 아니라 부여하는 의미도 크다.
전통시대에는 신부 집에서 초례복을 입고 혼례를 치렀다. 현대에 와서는 대부분 예식장에서 치른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중매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여성의 경우 25세가 넘으면 혼기를 놓친 노처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30세가 넘어도 혼인을 하지 않는 총각 처녀들이 많아 혼인의 연령이 높아졌다. 농촌에서는 젊은이가 부족하기에 혼기를 놓친 남성들은 해외의 여성과 혼인하기도 한다.
전통사회와 달리 현대에서는 결혼사진이 예식의 일부분이 되었다. 결혼식에 앞서 사진을 어디에서 찍고,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결혼 시기는 일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 촌스러운 행동 등으로 얼굴이 붉어지지만, 이를 남기는 것을 매우 중요한 의례라 여긴다.
여섯 번째 액자 회갑 칠순 사진
집안에 걸린 사진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회갑과 칠순에 찍은 사진이다.
태어난 지 61세가 되면 태어난 해의 간지가 되돌아온다. 태어난 갑자가 되돌아왔다는 의미에서 이를 회갑(回甲) 혹은 환갑(還甲)이라 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60세는 장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여 회갑연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70세가 되었을 때 칠순을 한다.
회갑에 찍은 사진은 부모님들의 오래 삶을 축하하는 의례를 행하며 남긴 기록이다. 그렇기에 성장한 자녀들과 손자, 손녀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이라는 자랑스러움과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많은 가족 구성원들은 주인공 스스로 뿌듯함을 가지게 한다.
일곱 번째 액자 영정 사진
집안 한 가운데 영정사진이 걸려있는 집들이 있다. 원래 영정(影幀)은 사람의 얼굴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리고 제사나 장례를 지낼 때 위패 대신 상에 올려놓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 것을 영정이라 한다.
최근에는 사진으로 그림을 대신한다. 사람이 돌아가시면 어느 집이든 돌아가신 분의 생전 사진을 분향소 정면에 걸어 놓는다. 뜻하지 않게 갑자기 상을 당하여 준비하지 못한 가정은 인물사진이라기에는 격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진을 걸어 놓기도 하고, 아주 젊었을 때의 사진을 걸어 놓아 동년배의 문상인을 멋쩍게 하기도 한다. 이를 대비하려고 어느 집안이나 연세가 어느 정도 지긋해지면 웃어른이 조부모이건 부모이건 건강 상태 헤아려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사진을 미리 준비들을 한다.
그러나 영정사진의 필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잘 지내시고 그리 급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데, 서둘러 어르신들을 사진관까지 모시고 가서 영정사진을 찍어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농촌에는 노인 부부 아니면 홀로 사시는 독거노인들이 많다. 그렇기에 외지에 사는 자식들은 영정 사진을 찍어두기 더욱 어렵다. 또한 본인 자신도 자신이 세상을 하직하였을 때 쓸 사진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기에 자진하여 사진관에 가서 찍기도 내키지 않는다.
가정마다 걸려있는 영정사진은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부모님, 아니면 남편과 아내가 먼저 돌아가신 경우에는 남편과 아내의 영정도 있다. 영정사진은 장례식에서 사용하지만 제사를 지낼 때마다 제사를 앞둔 가족들은 방안에 걸려 있던 영정사진을 내려 마른 수건으로 닦는다. 영정사진을 닦으면서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