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내력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문의재로(조사 당시 도계읍 신리 3반)에 위치해 있다. 신리는 마을 북쪽의 문의재터널과, 남쪽의 신리교, 서쪽의 427번 지방도로 들어올 수 있다. 마을 남쪽 경계에 있는 신리교에서 780m가량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신리 교회가 있다. 신리 교회 북쪽으로 360m정도 올라가면 도로의 왼쪽에 김진호 가옥이 있다. 이 가옥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1975년 9월 문화재 지정을 위한 장주근 선생의「삼척신리소재 너와집 및 민속유물」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당시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전해진다. 도계읍 신리는 옛 화전지대로 1974년 민속보호구역으로 지정됐지만 많은 집들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자 1975년 10월 김진호 가옥, 강봉문 가옥, 9개의 민속유물을 중요민속자료 33호(현 국가민속문화유산) “삼척 신리 너와집과 민속유물”로 지정했다.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배치/평면/구조
주 출입구는 남동방향이고 부속채는 없다. 평면 형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거의 정방형으로, 용마루 아래 세 줄로 나란히 이어져 있는 사방집이다.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방 4개가 ㄱ자로 붙어 있는데, 방의 명칭은 조사 보고서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1994년 『강원도 산간지역의 가옥과 생활』 보고서를 기준으로 사랑방, 방, 도장방이 ㅡ자로 붙어 있고, 도장방에서 ㄱ자로 꺽여 안방이 붙어 있다. 사랑방 쪽에 쪽마루와 아궁이가 있고, 마루 아래쪽에 외양간, 봉당, 부엌(정지)이 있으며, 외양간에 변소가 붙어 있다. 구조는 2고주 5량으로 기둥과 보, 기둥과 도리는 모두 사괘맞춤으로 정교하게 짜 맞추어져 있다. 초석은 모두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주초이다.

『삼척신리소재 너와집 및 민속유물』, 1975

『강원도 산간지역의 가옥과 생활』, 1994



지붕
너와지붕으로 너와를 여러겹 이은 후 용마루 부분을 굴피로 이었는데, 합각 부분에는 까치구멍을 내었다. 너와와 굴피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큰 돌과 통나무(너시래)를 지붕 위에 올려 놓았다. 천장은 고미반자로 마감했는데, 마루 부분은 서까래를 노출한 연등천장이다. 고미반자는 지붕 아래 다시 한 번 흙을 깐 두꺼운 천장을 설치한 것으로 보온에 유리하다.

실별 특징
각 방은 마루로 출입할 수 있는데, 도장방은 안방에서만 출입할 수 있다. 도장방을 제외한 방들은 외부로 직접 출입할 수 있는 외여닫이 문이 있으며, 외부 손님은 쪽마루로 사랑방에 출입할 수 있다. 도장방은 외부에서 여자 손님이 왔을 때 잠자리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평소에는 곡식 등을 보관했다.



부엌에는 4개 솥을 걸 수 있는 아궁이가 있고, 봉당에는 불씨로 사용할 숯덩이를 재에 묻어 두는 화티를 설치했다. 부엌과 봉당 사이에는 벽이 있는데, 벽에 조명 역할을 하는 화창(두등불)을 설치했다. 외양간은 가축이 외부로 출입할 수 있는 1짝의 판장문으로 된 미닫이 문이 있고, 외양간 상부에 다락을 만들어 가축의 먹이를 보관했다.



관련 유물
문화재 지정 당시 김진호가 사용하던 채독, 나무 김치통, 설피, 창이 함께 지정됐다. 1975년 「삼척신리소재 너와집 및 민속유물」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겨울이면 산짐승들이 눈에 발이 빠져 행동이 둔해지는데 이 때 설피를 신고 산짐승들을 잡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 10여 명이 하루에 멧돼지 20마리까지 잡은 기록이 있는데, 주로 멧돼지, 노루, 산양, 오소리, 너구리들을 잡았다고 한다.



현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