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율마을은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에 위치한 마을로 법정리인 율원리에 속한다. 칠성면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전까지 동중부면(東中部面)이라 불렸으며 사동(寺洞), 사평(沙坪), 도정(道井), 갈전(葛田), 율리(栗里), 고읍전(古邑錢), 지동(池洞), 쌍천(雙川), 쌍계(雙溪)의 9개 동리로 구성되었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폐합되면서 동상면(東上面)에 속한 송동(松洞), 내사(內沙), 외사(外沙), 하원(下院), 갈은(葛隱), 둔율(屯栗) 6개 동리와 연풍군(延豊郡) 장풍면(長豊面) 비도동(斐道洞)을 병합해 송동(松洞), 외사(外沙), 사은(沙隱), 율원(栗院), 사평(沙坪), 도정(道井), 갈읍(葛邑), 두천(杜川), 율지(栗池), 쌍곡(雙谷)의 10개리로 개편하고 칠성면으로 개칭했다. 그리고 1947년 2월 1일에는 장연면(長延面) 비도리(斐道里)를, 1989년 1월 1일에는 동면(同面) 태성리(台成里)를 편입해, 현재는 12개리로 구성되었다. 율원리는 괴산군 동상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둔율리, 외사리, 상원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둔율의 ‘율’과 상원의 ‘원’자를 합해 율원리라 이름 붙이고 칠성면에 편입되었다. 둔율마을의 행정리 명칭은 둔율리이며 둔배미, 대수께, 안우리의 세 자연마을로 구성되었다. 둔배미는 마을의 형상이 배를 닮았다하여 붙은 이름이며 대수께는 큰 물가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안우리는 재해를 입을 염려 없이 사람이 살기 편한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둔율은 한자로 ‘진칠 둔(屯)’자와 ‘밤나무 율(栗)’자를 쓰는데 강가에 심겨져 있던 밤나무가 흡사 진을 치고 있는 군대를 연상시킨다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 동쪽에 위치한 천수동에도 자연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1980년에 있었던 대홍수에 강물이 넘쳐 마을이 침수되어 주민들이 이주해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둔율마을은 중산간지역인 괴산에서는 드문 평야지대인 칠성평야에 위치한 마을로 달천과 쌍천이 만나는 합수머리부터 달천을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이다. 지금은 대수께와 안우리 둔배미의 세 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지만 1911년에 발행된 지도에 의하면 둔배미와 안우리에만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의 지도에 의하면 대수께와 천수동에는 아직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었다.
둔율마을은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을 주생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하지만 고령화로 말미암아 농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지고 농업소득만으로 아이들의 교육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되는 등의 이유로 말미암아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가구가 늘어났다. 둔율마을에서 순수하게 농업으로 발생하는 수익에 의존해 살아가는 전업농가는 전체 51가구 중 23가구이며 농업과 다른 생업을 함께 병행하는 겸업농가는 9가구이다. 농업 이외의 생업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가구는 전체 51가구 중 8가구고 전업농과 겸업농을 합쳐 농업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가구는 총 32가구로 63%에 달하며 비농가는 8가구로 전체가구 중 16%에 달한다. 수치만으로 확인했을 때는 전체가구 중 63%만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11가구를 제외하면 농가의 비율은 79%에 달한다. 경제활동가구 중 79%의 가구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그래도 다른 일반적인 농촌마을에 비하면 농가의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 이는 40대~50대의 청장년층의 비율이 다른 곳에 비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학업을 마치지 않은 아이들과 결혼을 하지 않은 아이들을 둔 젊은층에서 농업만으로 학비 등을 감당하기 힘들어 농업과 직장생활을 겸하거나 아예 농업을 중단하고 직장생활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주민 중에는 처음부터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공무원이 되거나 농협 등에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지도를 통해 봤을 때 대수께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1911년 이후로 볼 수 있다. 본동은 둔배미이고 대수께는 분가한 차자나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던 곳이라는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둔배미에서 대수께로 이사를 갈 때는 도와주지 않고 둔배미로 들어올 때는 좋은 곳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사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둔배미에는 둔율마을에서 4대 이상 자리를 잡고 살아온 최씨, 박씨, 윤씨 등의 큰집이 자리 잡고 있다. 평야지역에 위치한 둔율은 “이밥을 먹는 곳”이라고 소문이 나서 이사 오는 사람이 많았다. 연고 없이 이주해 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친인척의 권유로 이주해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주해온 주민들은 대부분 멀게는 조부가, 가까이는 부친이 이주해 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기에 많은 이주가 있었으며 대수께도 이때 외부에서 이주해온 이주민과 분가한 차자들에 의해 마을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70년에 항공촬영되고 1977년에 발행된 지도를 보면 둔배미, 대수께, 안우리, 천수동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마을주민이 아직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이주해 왔거나 이주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났다는 것으로 보아 60년대에는 이미 대수께가 하나의 자연마을로서의 모습을 갖췄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70년대 이전까지는 대수께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그리고 천수동에도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둔율마을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980년 큰 홍수를 겪고 나서부터이다. 1980년 홍수로 말미암아 달천의 물이 불어 둔배미, 안우리 일부와 천수동이 침수됐다. 인명피해는 다행히 없었지만 불어나고 역류한 강물에 침수되어 가옥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침수피해를 입은 마을주민들은 홍수피해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갈 새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1970년도 지도에 과수원으로 표시된 사과과수원자리로 둔배미와 안우리 그리고 천수동의 주민들이 이주해 왔다. 지금 대수께에 지어져 있는 같은 모습의 새마을 가옥들은 홍수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은 집들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은 이 집들은 모두 같은 모양과 구조를 하고 있다.
둔배미, 안우리, 대수께의 세 자연마을로 구성된 둔율마을은 행정적으로 3개 반으로 구성되었다. 3반은 둔배미 주민들로 구성되었으며 2반은 안우리, 1980년 홍수피해를 입고 이주해온 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대수께 거주 가구, 건너편 강변에 위치한 4가구로 구성되었다. 강 건너편은 행정적으로 둔율마을이 아닌 송동리에 속한 지역이다. 하지만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둔율마을에서 새로 집을 지어 이주했거나 둔율마을에 연고가 있는 이주민들로 행정적으로는 송동리에 속해있지만 실제로는 둔율마을에 속해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1반은 1980년 홍수피해를 입고 대수께로 이주해온 가구들로 구성되었다. 마을의 전체적인 구조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에 이루어진 외부 이주민들과 마을 내 차자들의 이주가 이루어진 1900년대 초·중반과 큰 홍수로 말미암은 마을내 수재민들의 이주가 있었던 1980년대 초, 두 시기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이 두번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둔율마을의 전체적 구조가 갖추어졌다면 마을내부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정부지원 사업의 결과이다. 둔율마을은 2008년에 농촌전통테마마을사업을 시작으로 2009년에 팜스테이 마을, 명품 농촌 만들기, 정보화 마을 사업 그리고 2010년 토종마을 육성 사업의 대상마을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농촌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사업의 운영에 필요한 시설들인 올갱이 생태체험관, 산책로, 물레방아, 디딜방아, 황토방, 정보화센터, 둔율마을회관 등의 각종 숙박시설과 체험관련 시설들을 새롭게 건립하거나 기존의 시설을 개축했다. 이 외에도 농촌체험관광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방문객이 늘어나자 숙박편의를 제공하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펜션을 건립했으며 마을로 이주한 외부전문가가 반딧불이와 나비를 비롯한 각종 곤충들의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을 건립했다. 이런 사업들이 진행되기 전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가옥들을 제외한 구조물이라고 해봐야 마을회관과 노인회관, 생활관이 전부였다. 하지만 각종 농촌지원사업을 유치하고 농촌관광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전통적 구조물인 마을회관, 노인회관, 생활관 등의 마을주민들을 위한 구조물이 아닌 외부인을 위한 구조물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해 마을을 구성하고 있다.
2003년도부터 전개된 1사1촌 운동은 하나의 기업 또는 단체와 하나의 농촌마을이 자매결연해 일손 돕기, 봉사활동, 농산물 직거래 등의 도농간 교류활동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둔율마을의 변화는 2005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의 1사1촌 자매결연이 시발점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둔율마을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의 1사1촌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의 관계맺음을 통해 도농교류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후 적극적으로 다른 곳과도 1사1촌을 맺었으며 다양한 농촌지원사업을 유치해 마을을 변화시켰다.
둔율이라는 이름보다도 오히려 둔율올갱이마을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오랜 시간을 불려온 이름보다 더 많이 불려지고 있는 둔율올갱이마을이라는 이름은 정부에서 시행한 농촌지원정책사업인 농촌전통테마마을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다. 둔율마을은 수려한 수변경관과 어족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올갱이가 풍부하게 서식하는 곳으로 마을의 대표적 어족자원인 올갱이를 테마로 마을 이름을 정한 것이다. 둔율마을은 2008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면서부터 농촌관광을 위한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고 농촌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농촌관광프로그램은 주로 방문객이 프로그램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체험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농업과 수변자원을 활용한 체험들이다. 체험프로그램은 농사체험, 만들기체험, 잡기체험 등으로 구성 된다. 체험프로그램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농사체험이다. 농사체험은 계절에 따라 심기와 수확하기로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다. 봄에는 ‘감자심기’, ‘모심기’, ‘고구마심기’ 등의 심기체험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름과 가을에는 ‘땅콩캐기’, ‘옥수수따기’, ‘도라지캐기’, ‘감자캐기’, ‘고구마캐기’ 등 수확하기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만들기체험은 올갱이 모형의 액세사리를 만드는 ‘올갱이공예’와 ‘계란꾸러미 만들기’, ‘더덕화분 만들기’ 그리고 ‘인절미 만들기’, ‘김장담그기’, ‘올갱이부침개 만들기’, ‘메주 만들기’와 같은 먹거리 만들기로 구성된다. 잡기체험은 올갱이와 물고기 등의 어족 자원을 활용한 체험으로 ‘올갱이잡기’, ‘돌무지헐어고기잡기’, ‘견지낚시’, ‘조개잡기’, ‘오리그물’ 등으로 구성된다. 체험프로그램 외에도 용인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귀농한 임진택씨가 운영하고 있는 ‘곤충체험관’과 ‘나룻배타기’, ‘풍경마차타기’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런 개별 프로그램들로 계절별 프로그램과 당일 및 1박2일 체류형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둔율마을은 정보화마을로 지정되면서 마을에 정보화센터를 개소하고 전자상거래시스템을 구축하였으며 컴퓨터 보급을 신청한 가구에 컴퓨터를 지원해 주었다. 정보화마을지정을 통해 기반은 마련된 셈이다. 이렇게 마련한 기반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마을주민들에게 바로 이 능력을 길러 주기 위해 정부의 지원사업, 지자체와 농업기술센터 같은 기관 의 교육 지원 등을 통해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강사를 초빙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컴퓨터관련 교육은 정보화마을로 선정되면서부터 매년 진행해 오고 있다. 둔율마을은 이런 교육과 시설지원 덕분에 전자상거래를 활용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고객관리를 통해 안정적 판매처를 확보함은 물론 좀더 높은 가격에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농산물의 가격동향을 파악해 좀더 가격이 좋은 시장에 농산물을 출하하고 있다. 둔율마을은 이외에도 농촌체험프로그램을 좀더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주민교육도 개설·운영하고 있다. 농업을 업으로 삼아 평생을 농사만 지어온 주민들에게 농촌체험프로그램을 운 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농촌체험관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방문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운영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둔율마을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과 프로그램의 능숙한 운영능력 함양을 위해서 주민교육을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다.
선진지 견학은 말 그대로 보다 앞선 곳, 선진화된 곳을 찾아가 그곳의 성공요인을 보고 배워오는 교육이다. 다양한 지원 사업들의 세부사업으로 진행된 선진지 견학은 마을주민들의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지원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마을 스스로 지속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둔율마을은 2008년의 농촌전통테마마을에 선정된 이후 정보화마을 사업 등 다양한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사업을 진행해 왔다. 둔율마을은 사업을 운영하면서 사업 내용에 포함된 선진지 견학을 사업초기 단계부터 매년 진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