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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남구 달리 달동 살림살이

주제 유정수·박은경 가족의 살림살이
조사 살림살이 이야기, 공간과 살림살이, 통계, PDF

유정수 박은경의 Life History

처녀 총각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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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실한 보석 총각 유정수는 1965년 울산시 울주군 덕하에서 1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덕하에서 청량국민학교와 청량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울산 중구 태화동에 있는 울산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를 1984년에 졸업하고 대학입시 준비를 하다가 1986년도에 군에 입대하였다. 군 전역 후 안경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서 2년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눈과 안경을 취급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다. 안경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안경점에서 근무를 하였다. 안경점에서 1년 동안 근무를 하다가 다시 울산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이때가 1990년이었다. 이때부터 보석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2년 동안 공부를 하고 보석학원 과정을 졸업하면서 1992년 10월 자신의 보석가게를 개업하였다. ‘달동쇼핑’이라는 종합쇼핑몰 내에 점포를 얻어 보석가게를 열었는데 이곳은 부인인 박은경과 만나게 된 곳이기도 하다. 유정수의 보석가게 바로 앞에서 박은경이 소품가게를 운영하였기 때문이다. 엄격한 가정에서 바르게 자란 야무진 아가씨 박은경은 1972년 1월 18일 경주 외동읍에서 1남 2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1975년 네 살 때 가족이 울산으로 이사를 해 울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가 다녔던 강남초등학교는 현재 딸 세린이도 다니고 있고, 아들 호용이도 61회로 이 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은경은 1985년에 강남초등학교를 38회로 졸업한 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스무 살이 되면서 소품가게를 시작하였다. 박은경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인 1990년대 초반 울산 달동에는 쇼핑센터가 하나 둘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스무 살이 되면서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부친의 도움으로 ‘달동쇼핑’이라는 쇼핑센터에서 소품가게를 시작하였다. 박은경은 당시 아버지에게 “내 4년 대학 등록금하고 생활비 준다고 생각하시고 가게 내는데 도와주세요.”라며 도움을 요청했다.달동 시가지에 위치했던 쇼핑센터는 사라지고, 현재 그 자리에는 다른 상점이 들어섰다. 당시 그가 운영했던 소품가게(수입품을 취급하였음)에서는 식기·주전자·그릇을 비롯한 주방 용품부터 청소도구·세제·인테리어용품까지 다양한 일상생활용품들을 판매하였다. 아울러 수입 인테리어용품을 비롯해 양주도 취급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에는 옆 매장까지 가게를 확장하여 옷가게도 함께 운영하였다. 옷가게는 여성복을 판매하는 매장이었다. 그가 가게를 하고 있는 동안 그의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하였고, 방학이 되면 그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이럴 때면 박은경은 친구들에게 옷가게를 맡기고 자신은 소품가게를 돌보았다. 박은경은 이때가 결혼 전 가장 즐거운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결혼 전 박은경의 아버지는 통금시간을 만들어 자녀를 일찍 귀가하게 했을 만큼 엄격하였다. 통금 시간은 저녁 9시였다. 소품가게 문을 닫는 시간이 오후 8시쯤이었으니 오후 9시까지 귀가하기 위해서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가끔 예외가 되는 날도 있었다. 친구들의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미리 전화를 해서 부친의 허락을 받으면 좀 더 늦게 집에 들어가도 되었다. 조건이 있다면 시간을 정해놓고 놀라는 것이었다. 11시면 11시, 12시면 12시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조건이 따랐다. 아울러 장소도 미리 알려야 하는데, 알리고 허락만 떨어지면 친구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을 방문해도 되었다. 박은경은 이렇듯 엄격한 아버지에게 반항한다는 생각도 한번 해보지 않고, 그의 말을 따랐다고 한다. 자신의 동생들은 아버지가 똑같이 엄격히 해도 자신처럼 무조건 따르지만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그런 그에게 결혼은 해방구가 되기도 하였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귀가시간의 자유에서만큼은 벗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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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연애

유정수와 박은경은 1995년 1월에 결혼하였다.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건 박은경이 소품가게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결혼하기 2년 전쯤인 1992년 10월경에 박은경의 소품가게 맞은편에 금은방에 들어섰는데, 이 금은방을 운영했던 사람이 바로 유정수였다. 유정수와 박은경이 이웃사촌의 관계를 넘어 이성으로서 서로에게 다가가게 되는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웃에서 각자의 매장을 운영하면서 양가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였고, 유정수와 박은경은 이러한 양가 어른들의 관계 속에서 결혼을 전제로 만나게 되었다. 가게를 마친 후 데이트도 하고 가게를 쉬는 일요일이면 대전으로 벚꽃놀이를 가기도 하였다. 또한 박은경의 모친이 점심 도시락을 싸서 주면 자연스럽게 함께 먹기도 하면서 사랑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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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촉을 밝힘

이렇게 1년여의 시간 동안 사랑을 키워오다가 1994년에 양가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상견례는 박은경 부친의 지인이 운영하는 소고기 전문점에서 하였다. 상견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양가 부모님은 결혼을 허락한 것이나 같은 상황이었고, 상견례는 그저 결혼을 위한 절차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일사천리로 결혼준비가 이루어져 1995년 1월 8일 달동 목화예식장에서 드디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양가 친지들과 지인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지인들이 모두 참석한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이들이 결혼식을 올린 목화예식장은 유정수·박은경 부부가 결혼을 하던 시기에 새로 지어졌다.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의 달동과 삼산동에 건물이 하나 둘 세워지기 시작해서 현재의 시가지가 형성되었는데 목화예식장도 그 시기에 세워진 건물이었다. 그 당시에 목화예식장은 울산의 결혼식장 중에서도 ‘잘 지어진 좋은 시설’이었다. 결혼식은 1층 특실에서 진행되었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울산 토박이고, 신랑신부 역시 모두 울산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예식장은 하객들로 가득 찼다. 예식과 폐백, 신랑의 양복, 신부의 드레스 대여, 신부화장, 부케, 사진촬영을 모두 결혼식장에 맡겨서 하였다. 예식장 사진촬영 옵션에는 ‘결혼식의 모습을 담은 앨범’과 ‘액자사진 2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웨딩 야외촬영과 해외 신혼여행 야외촬영은 시고모님의 소개와 도움을 받아 사진사를 섭외하여 진행하였다. 신혼여행은 괌으로 다녀왔다. 여행사를 통해서 신혼여행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여 다녀왔다. 2005년에도 부부가 괌 여행을 다시 한 번 다녀왔는데, 이때는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이었다. 박은경은 이 당시의 여행에 대해서 인상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 10년을 맞이하여 신혼의 기분을 느껴보고자 해서 아이들도 떼어놓고 비행기에 올랐다. 더욱이 10년 전과 똑같은 기분을 낸다고 값비싼 신혼여행 패키지 상품을 예약했다. 설레고 재미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 기대는 출발 첫날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진짜 신혼부부들의 닭살스러운 애정행각에 민망해하며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도 저때 저랬나?”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며 결국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가이드에게 말을 하고 신혼여행팀에서 나와 자유여행으로 전환을 하였다. 자유여행팀에는 황혼여행을 온 노부부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쪽 분들과 어울려 편안하고 재미있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유정수 박은경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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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부터 현재까지

박은경은 결혼을 하면서 소품가게를 정리하고, 보석가게를 남편과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8년 10월에 첫째 아들 호용이 태어났고, 박은경은 가게보다는 아이 양육을 주로 담당하였다. 달동에 위치한 현재의 가게로 옮긴 것은 1998년경이었다. 새롭게 이사하는 가게는 방 두개와 부엌, 그리고 욕실(화장실)이 함께 딸려 있는 구조였다. 이들 가족은 이곳에서 생업 활동과 주거 생활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작년(2008년 5월)에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보석가게는 주거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가게에 딸려있는 방은 여전히 가족에게 중요한 공간이다. 아파트로 주거공간을 옮겼다고는 해도, 가족이 가게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유정수가 항운노조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03년도부터이다. 이들 부부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맞벌이를 하기 시작하였고 재산도 축적할 수 있었다. 맞벌이를 하면서 박은경이 주로 보석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유정수는 항운노조에 근무를 하면서도 출근을 하지 않는 날에는 박은경과 함께 보석가게를 돌본다. 유정수가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 오랫동안 귀금속 가게를 운영하였기 때문에 가게를 보는데 문제가 전혀 없다. 또한 유정수는 귀금속협회 총무를 맡고 있으면서, 귀금속협회에서 주관하는 월례회의에도 참석을 하고 있다. 여전히 보석가게의 공동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정수·박은경 부부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함께 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모임에도 열심히 다니고 있으며 자녀들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학교 운영위원으로서의 활동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또한 양가 부모님에게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유정수 박은경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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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 월드메르디앙 세린이네 집

가족의 생업터전인 보석가게 옥보석에 함께 붙어있던 주택에서 현재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것은 2008년 5월 중순이었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은 아파트가 완공되기 전인 2005년이었고, 그 후 2008년 5월경에 아파트가 준공되어 5월 중순에 이사를 하였다. 보석가게에 딸려 있는 주택은 방 2곳, 욕실 겸 화장실,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큰 방은 부부가 사용하였고, 작은 방은 거실 겸 아이들의 방이었다.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대부분의 가구와 이불을 새로 구입하였기 때문에, 현재도 가구와 이불과 같은 살림살이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석가게에 있는 방은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유정수·박은경 부부가 집을 이사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자녀들에게 개인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남에 따라 각자의 공간을 만들어줘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고 정보를 수집하던 중, 유세린이 다니고 있는 강남초등학교 뒤쪽으로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곳은 강남초등학교와 가까우면서도 아들 호용이 다니고 있는 월평중학교도 가깝고 보석가게에서도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또한 대형마트(롯데마트 울산점)까지 차로 5분 거리이며 은행, 병원, 학원, 각종 상점 등의 생활편의시설들이 두루 갖춰진 곳이었다. 달동 바로 옆에 위치한 삼산동 역시 백화점·버스터미널·역 등이 있는 울산의 중심지인데, 이 삼산동까지도 자동차를 이용하여 5분에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게다가 양가부모님이 기거하시는 댁과도 가깝다는 이점이 있었다. 친가인 덕하까지 자동차로 20분이 걸리며, 외가는 신정동으로서 5분이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 부부는 달동에 계속해서 살며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 곳이 바로 달동에 위치한 월드메르디앙이다.



달동 월드메르디앙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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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의례, 그리고 새집증후군

아파트를 분양받고 계약을 한 것은 2005년이었다. 아파트의 총 면적은 114. 5521㎡였으며, 총 금액은 266, 400천원이었다. 아파트 금액의 10%를 취득세로 납부하였고, 총 금액의 40%는 융자를 받아 지불하였다. 대출금은 현재도 지불하고 있다. 이사를 하는 데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가정이 전에 살던 집에서 사용하던 살림살이를 모두 새집으로 옮기는 것이 보통인데, 세린이 집의 경우는 보석가게의 집도 계속 사용할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살림살이를 다 옮기지는 않았다. 가구와 전자제품들은 그대로 두고 이불, 식기류와 같은 살림살이들만 옮겼다. 양쪽 집을 모두 사용할 것이었기 때문에 급하게 옮기지 않고 일주일정도 시간을 들여 짐을 옮겼다. 당장 필요한 물건부터 조금씩 옮겨왔다. 그 중 집으로 가장 먼저 들여 온 물건은 부부의 예장지와 박은경이 혼수로 해 온 원앙금침이었다. 이 두 가지 물건이 가장 먼저 새집의 장롱 속으로 옮겨졌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가장 먼저 잠을 잔 사람은 세린이네 가족이 아니었다. ‘집터밟기’를 먼저 해야 한다는 집안 어른의 권유로, 친가 부모님이 이사 오기 전날 새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날 부모님이 새집에서 주무시는데 사용했던 이불은 혼수로 해왔던 색동이불이었다. 새집에 왔으니 새 이불로 부모님을 맞이하려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현재 집안에 있는 모든 이불들은 이사를 오면서 새로 구입한 것들인데, 당시 이사를 준비하며 부산의 진시장에서 구입을 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사를 하기 전날까지 날짜를 맞추지 못해서 집에 있는 유일한 헌 이불로 부모님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유정수 · 박은경 가족의 이사 날짜는 2008년 5월 20일이었다. 이날부터 두 달동안 액막이용으로 굵은 소금을 한 자루 사서 현관 앞에 놓고,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밟고 다녔다. 이 소금의 일부는 현재도 남아있어 박은경이 음식을 조리할 때 사용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새집증후군’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새로 집을 짓는데 사용된 건축자재에서 생성된 물질들이 사람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박은경은 새로 이사한 현재의 아파트에서 새집증후군과 관련된 증상들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집에만 들어오면 눈이 매워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환기를 시키는 것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휴가나 명절 등으로 인해 집을 오랫동안 비우면 더 심해져서 지금도 환기를 꼭 시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