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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살림살이

주제 조창남·김순점 부부의 살림살이
조사 살림살이 이야기, 공간과 살림살이, 통계, PDF

살아온 이야기

조창남의 살아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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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해방되었을 때 국민학교 다니고 계셨겠네요? 그렇지. 해방 됐을 때 우리가 2학년 올라갔을 때인가 1학년 말기인가 그래... 전쟁이 났을 때 중학교 1학년이셨겠네요? 그렇지. 내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6. 25사변이 났어. 배도 전부 다 끊기고 그래가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 왔지. 집에 돌아오니까 남해도 소문이 싹 퍼졌어. 6.25사변이 났다고. 수산고등학교를 다니시다가 전학을 가셨는 건가요? 자형이 동래중학교에 있으니까 동래고등학교로 갔지. 졸업을 하신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내가 동래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수대 시험을 쳤어. 수대 시험을 쳐서 합격증을 받아 가지고 집에 아버지한테 간거야. 아버지가 합격증을 잡아 찢어 버리는 거야. 아버지가 “너는 고등학교 마쳤으면 됐다. 지금 내 밑으로 와서 일을 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안 한다 하고 한달 동안 집 밖으로 싸 돌아 다녔어 . 나중에 할 수 없이 마을로 돌아와 가지고 아버지 밑에서 사무장을 했어. 사무장은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어장의 살림을 맡는거야. 인부들 급여주고. 그때는 급여를 요새 같이 매월 주는게 아니고 자기들 가정에 뭐 필요하다고 달라고 하면 주고 그렇게 했어. 어장은 어떤 어장을 운영하셨나요? 정치망 하고 오가들이를 했어. 오가들이는 지금 권현망이라고 하는 건데 멸치 잡는거야. 배는 몇척이나 가지고 계셨었나요? 그 당시에 많았지. 권현망은 발동선 2척 하고 목선 2척이 있었고, 정치망은 발동선 1척, 목선 2척이 있었어. 작은 목선도 2척 더 있었고 . 권현망어업과 정치망어업을 언제까지 운영하셨나요? 내가... 사십 몇 살 먹을 때까지 했다. 그때가 48인가... 47인가... 가면 갈수록 어족 자원이 다 고갈 되면서 잡히는 건 줄어들고 인건비는 늘어나고 하니까 수지가 점점 안 맞는 거야. 수지가 안 맞으니까 못하겠는 거야. 그러면 결혼을 언제 하셨나요? 내가... 27살에 했어. 그 당시로는 늦은 나이지. 신랑하고 신부하고 선도 봤고... 부모님들이 나를 일찍 결혼시킬려고 했는데 내가 좀 더 있다 할꺼라고 시간을 늦췄지. 마을 이장도 하셨다고 하던데요? 1990년도부터 2년 했지. 그런데 차가 있는 거 같으면 모르겠지만 버스 타고 다닐려고 하니까 영... 그리고 내 일이 바빠서 안 되겠더라고.



조창남 김순점 부부 살림살이 조사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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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점의 살아온 이야기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일흔 둘이지. 우리 영감하고 4살 차이난다 . 형제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2남 2녀. 오빠가 둘. 오빠 있고 그 밑에도 오빠고 그 밑에는 언니고. 나는 막내.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신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부산에 있을 때는 일 같은 건 별로 안 하고 집에만 있었고... 친구들도 많고 그러니까 그때가 좋았지. 결혼 하시면서 부산에서 남해로 오신거네요? 그러니까 결혼하기 열흘 정도 놔두고 부산에서 남해로 왔지. 그런데 물건리로 시집을 오니까 전부 다 아는 아이들 인거야. 재구도 고등학교 3학년이고 우리 시동생도 3학년이고... 보통 부자집 끼리 결혼 하니까 친정집도 잘 살았지 않으셨나요? 그런데로 살았지. 많이 잘 살지는 않아도 사는 거는 넉넉하게 살았지. 선을 봤는데 상대방이 마음에 안든다고 파혼 할 수는 없지 않나요? 그래. 그런 거는 없었어. 시집 오실 때 예물로 어떤 것을 받으셨나요? 반지하고 목걸이 그런 거는 받았고... 어르신 동생분들이 많으시던데요? 그러니까 시동생이 다섯이지. 내가 시집 오니까 우리 막내 시동생이 중학교 1학년 들어가더라고. 그래서 고등학교 까지 내가 보냈지. 자녀분들은 어떻게 되세요? 둘이 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딸은 49살 용띠. 아들은 40살 쥐띠. 호용이는 안 놓을라 하다가 그 위에 형이 7살인가 먹고 나서 낳았는 거야. 그러니까 첫째하고 막내하고 차이가 참 많지. 형이 대학교 다닐 때 막내는 국민학교 다녔거든. 시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우리 시아버지가 진짜 얼마나 잘 했는데... 처음에는 내가 일을 잘 못해서 안 좋아 했었는데 가만있어 보니까 내가 괜찮다 싶으셨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도와줄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우리 시어머니가 그렇게 너무 좋아. 나한테 너무 잘 했고. 우리 아이들 부산에서 공부할 때도 우리 어머니하고 있었거든. 시어머니는 내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가 7년 동안 대소변을 받아 냈지. 7년을 받아 냈는데 요새 같이 좋은 세상이 아니고 기저귀를 다 빨아야 되고 그랬어. 우리 아이들 쓰던 기저귀를 안 버리고 나중에 걸레를 해도 되겠다 싶어서 그걸 빤 다음에 삶아가지고 놔뒀었거든. 시부모님께서 다 돌아가신 이후에는 병수발을 안해도 되니까 살림이 좀 나아지셨겠네요? 두분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조금 살만 했지. 지금은 멸치액젖만 파시는 데 그 수입으로 생활 하실만 하신가요? 아이고 참 그거 가지고 택도 아니야. 기본 생활도 그거 가지고는 안 돼. 병원비 같은 걸로 들어가는 거는 별로 없는데 돈이 그... 경조사비가 굉장히 많고 보험비 같은게 한달에 또 엄청 많이 나가. 우리 아들 것 딸 것 내가 다 넣어 주거든. 보험료. 암 보험 같은 큰 보험은 다 넣어 주고 있거든.



텃밭 경작 조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