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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 특구 민속지

주제 한국 속 작은 세계
조사 다문화특구 원곡동, 사진, 영상, PDF

원곡동의 역사

안산시 원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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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안산군은 군내면〮잉화면(仍火面)〮대월면〮와리면〮마유 면〮초산면 등 6개의 면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의 지 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안산군은 과천군과 함께 시흥군으로 통합되었다. 1976년 10 월 화성군 반월면을 중심지로 ‘반월신공업 도시건설계획안’이 발표되었다. 반월공단이 조성되면서 인구가 증가하여 1986년 1월 1일부로 안산시로 승격하게 되었다. 이때 군자 동〮원초동〮선부동〮수암동〮중앙동〮반월동〮원곡동 등 7개 동으로 재편되었다. 그 이후 행정구역 변화와 시의 확장으로 현재 25개 행정동과 30개의 법정동으로 분화되었다. 최 초의 분동은 시로 승격하고, 만 2년 10개월이 지난 1988년 10월 1일 중앙동과 원곡동, 그 리고 원초동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때 원곡동은 원곡 1〮2동으로 늘어났다. 원곡동(元谷洞)은 조선시대에 안산군 와리면 원상리(元上里)와 모곡리(茅谷里)를 합친 지역이었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 제 111호에 따라 시흥군 군자면 원곡리로 되었다. 원곡리는 원상리(양지마을)의 ‘원(元)’자와 모곡리의 ‘곡(谷)’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모곡리는 예전에 ‘땟골’이라고 불렀는데, 띠(茅) 혹은 삘기라는 다년생 풀이 많이 자생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모곡은 ‘땟골’의 한자 표기이며, 현재는 선부동에 포함되어 있다. 원곡동은 1986년 1월 1일 안산시가 출범한 뒤, 2002년 11월 1일 안산시가 2개 구로 구분될 때 단원구 원곡동으로 되었다. 이때 원곡동은 원곡본동, 원곡 1〮2동으로 나누어졌고, 외국인 상점 밀집지역인 다문화특구 지역은 원곡본동에 위치하고 있다. 원곡동은 새로 지어졌다고 하여 ‘신촌’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반월공단 개발 이전에는 밭보다 논이 많았다. 과거 원곡동은 땟골〮양지말〮백성말〮풍전 등의 자연마을 이름이 있었다. 관모산은 양반이 일을 볼 때 관을 벗어놓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6단지 아파트가 들어서있다. 땟골은 예전부터 피난처라고도 하는데 전쟁 때 이곳은 피해를 입지 않는 이야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현재 땟골에는 러시아〮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고려인 2천 명이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다. 양지말[마을]은 분묘가 많았던 곳이었으며, 현재는 안산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각종 은행〮경찰서 등 공공시설,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원곡동은 외국인주민센터 인근, 다문화거리를 중심으로 많은 은행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 은행은 다른 지역과 달리 주말에도 영업을 하는데, 이때 많은 외국 인노동자들이 주말에 은행업무를 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주거래 은행인 중국은행은 다문화거리로부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토요일은 휴무고 일요일은 업무를 한다. 이것은 일요일에 많은 노동자들이 원곡동에 모이기 때문이다. 백성말은 백 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만한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의 원곡본동이다. 풍전은 토 질이 좋아 매년 풍작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밖에 지명으로 성안이는 산마루가 성처럼 생겼는데, 이 안에 마을이 위치하 고 있어 성안이라고 한다. 별테이는 풍전 마을 뒤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형상이 마치 별당과 같아 그렇게 불리다가 음이 변해 별테이라 불리게 되었다. 신흥촌은 1937년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며, 능길은 능이 있다가 없어진 후 마을이 생긴 곳이라는 뜻이다. 새뿔은 지형이 우형각이라는 뜻이고, 선곡은 배가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원곡동 역시 반월신도시 건설 이전에는 전형적인 전통마을의 형태였기 때문에 다양한 자연마을과 각 길마다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공업도시로 변화하고, 이주민〮외국인 들이 원곡동에 거주하면서 마을의 지명유래〮전설등을 아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위에 제시된 지명들은 고령의 내국인 제보자들을 통해서 찾을 수 있었다.



안산시 반월공단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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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현재, 원곡동은 전체 면적 가운데 임야가 34km²로 가장 넓다. 농지는 18.8km²로, 전체 면적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다. 농산물로는 주곡인 쌀과 무, 배추 등의 채소가 재배 되고 있다. 원곡동에는 수인선 경유지로 원곡역이 있었다. 수인선은 1937년 소금과 농산물을 운송하기 위해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수원역과 인천시 중구의 인천항을 운행하는 협궤 철도이었다. 그러다가 1973년 11월에 인천항[남인천]역〮용현역이 폐쇄되고 인천 송도가 종착역 이 되었다. 1977년부터는 화물 운송이 중단되었으며, 운행 횟수도 1983년부터는 1일 3회 로 줄었다가 1996년 1월 1일부로 수인선 운행이 중지되었다. 당시 수인선이 경유하는 안산지역의 원곡역과 고잔역은 화물수송량보다 여객수송량이 많았다. 이는 수인선 상에 있는 모든 역과 주변지역이 승용차나 노선버스 등이 미비한 상황에서, 수원과 인천을 최단거 리로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운송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안산역은 1988년에 수도권 전철인 안산선이 개통되면서 생긴 역이다. 안산역과 신길온천역 사이에는 원곡역이 설치되었는데, 상〮하행 열차가 교행하던 곳이었으며, 안산역이 건설 된 이후 폐역 되어 철거되었다. 한편, 수인선 원곡역은 인근에 소규모 공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과거 원곡역 임을 알리는 간판과 입구에 두 그루의 고목이 있다. 원곡동은 서울과의 지하철 이외에 평택시흥고속도로(제2서해안고속도로), 서울-안산간고속도로, 42번국도 외에 각종 시〮군 도로가 나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안산시 원룸 주변


외국이주민의
마을 정착과정

반월공단

안산시 원곡동은 1970년대 반월공단 건설로 인해 이주민들이 마을에 정착한 곳이다. 여기서 이주민들은 반월공단이 건설될 당시 신길동〮선부동〮원시동〮와동 등에서 거주했던 사람들로 원곡동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주민들은 초기 이주 당시 추첨을 통해 약 80평 내외의 토지를 받아 집을 짓고 살았다. 원곡동은 이주민들이 유입되기 전 상업지역〮거주지역 등으로 이미 구분해 놓았다. 이주민들은 상업지역에서 식당 임대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공단에 일하는 사람들이 원곡동에 유입 되면서 월세〮식당 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인력난으로 내국인 노동자들이 감소하면서, 산업연수생 제도, 고용허가제 등을 통해 외국인노동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원곡동 상업대상은 내국인노동자에서 외국인노동자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이주민들중 원곡동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건물을 가지고 있으며, 70세 이상인 경우가 많다. 이 사람들은 초기 원곡동에 이주하여 터전을 마련한 뒤, 농사, 공단노동자 등으로 생활하거나 두 일을 병행하는 경우 등 다양한 생업형태가 나타났다. 이후 1980년대 초반 반월공단에 들어선 공장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때 원곡동은 거주인구만 34,000명이 넘어서 는 대단위 노동자 주거지역으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노동자들은 공단과 인접하고, 집 값이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원곡동에 거주하면서 생활했다. 이때 이주민들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본인의 집에 월세를 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내국인 노동자들이 빠지고 외국인 주민들이 들어오면서, 원룸형태의 건물을 지어 현재 대다수의 건물을 가지고 있는 이주민들은 임대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주민들의 임대수입은 집집마다 다르지만 새로지은 건물의 월세는 평균 35만원 이상이다. 이밖에도 공단에 다니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유흥시설이 자리 잡으면서 현재까지 중심 상업구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옛 원곡역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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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이주민

현재 원곡동에 건물을 가지고 있는 내국인들은 원곡본동이나 원곡1동 아파트단지에 거주중이다. 특히 원곡1동 아파트단지 주변에 내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1990년 대 이후 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외국인들이 원곡본동 주변으로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하면서, 내국인들은 원곡1동, 원곡고등학교 주변 등 중심지에서 벗어난 곳에 거주한 것이다. 원곡동에는 공단으로 인해 거주하게 된 내국인이 주민 이외에 또 다른 이주민인 외국이주민이 많이 거주 하고 있다. 원곡동은 현재 안산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한 중국과 교류, 노태우 정부 당시 고향방문입국 허용 등의 제도로 중국동포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이때 중국동포 들뿐만 아니라 고려인들도 유입되었다. 이렇게 동포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초기 한국방문〮친척과 만남 등의 이유로 왔던 사람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 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중국동포들이 원곡동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어를 쉽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먼저 온 중국동포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이후 원곡동으로 오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의 경우 중국동포보다 한국어를 쉽게 구사할 수 없었다. 고려인들은 러시아 정책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쉽게 원곡동에 정착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로 고려인을 위한 각종 센터들이 생겨나고, 먼저 들어온 고려인들을 통해 땟골이라는 곳에 정착하며, 현재 그들만의 주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공단의 인력난과 고용허가제도 등을 바탕으로 원곡동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흔히 이 사람들을 외국이주민, 외국인노동자 등으로 칭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공단 내 기숙사나 회사에서 제공한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한국에 비자를 받고 오기 때문에 대부분 4년 이상 한국에서 체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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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현황

이렇게 외국인 이주민들이 원곡동에 거주하면서 원곡동은 ‘외국인 집단 거주 지역’, ‘외국인 마을’, ‘국경 없는 마을’ 등의 외국인 관련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 원곡 동에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면서 국적별, 종교별 등의 형태로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안산에는 중국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고려인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외국 노동자들이 많으며 해마다 국적별로 차이가 있다. 법무부의 공식적인 외국인 등록현황은 원곡동 외국인 현황과 큰 차이를 보인다. 출입 국관리사무소와 안산단원경찰서의 집계에 따르면, 안산시의 외국인 수는 불법체류자 2,832명을 포함해서 총 47,392명이다. 그러나 외국인주민센터의 비공식 통계자료에 의 하면 전체 인구수는 70,082명이다. 둘 사이에는 22.690명의 큰 차이를 보이는데, 실제로 원곡동의 외국인 수는 10만 명이 넘을 수 있다는 것이 민간단체의 의견이다. 이것은 불법 체류자가 원곡동에 상당수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원곡동의 많은 유동인구에 의해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힘들다. 한편, 불법체류자 가운데 안산시 국적별 등록인구수 에 비교하면 필리핀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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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동의 변화

초기 외국인노동자들은 공단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접근성, 비용 등을 고려하여 거주지를 선정했다. 그러나 점점 다양한 국적과 많은 외국인들이 유입되면서 거주지 형태도 변했다. 현재 약 81개국의 사람들이 취업〮결혼 등 다양한 목적으로 원곡동을 방문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모인 외국인들은 종교, 국적 등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런 교류를 통해 문화, 여가생활을 즐기며 지낸다. 이렇게 외국인들의 의식이 변하면서 원곡동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원곡동 주변으로 각국 식당들이 생겨났고, 각종 종교 센터〮사원 등이 만들어지면서 외국인들이 원곡동에 정착하는 추세가 증가되고 있다. 이렇게 국적별〮문화별〮종교별 등 정착공간이 생기면서 외국인들은 이주 초반보다 조금 더 안정되고, 쉬운 정착을 할 수 있었다. 원곡동이 외국인 집단 거주 지역으로 이미지가 굳혀지고, 다양한 거주형태가 나타나는 모습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뤄진 것이다. 1990년대 외국인들이 반월공단, 시화공단에 취업하면서 원곡동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 종교단체, 각종센터 등이 생기면서 현재와 같은 외국이주민의 정착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재 한국 건설업이 불경기이지만, 원곡동은 기존의 2,3층건물을 헐고 새롭게 4층건물로 여기 저기 재건축중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원곡동에 외국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다 보니 임대를 위한 재건축이 붐을 이루는 것이고, 공사기간도 3개월이면 족하다. 현대식 원룸에는 방, 부엌, 베란다, 화장 실 등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한국인이 찾지 않는
원곡동 다문화거리

원곡동 다문화거리

원곡동 다문화거리는 평일에 많은 사람이 다니지 않지만, 외국인노동자들이 쉬는 휴일, 주말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가 된다. 이는 다문화거리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원곡동을 다니다 보면 외국인들은 쉽게 볼 수 있지만, 한국인들은 보기 어렵다. 원곡동에는 실제 거주하는 원주민, 센터〮기관 근무자, 다문화 관련 조사자를 제외하고는 외국인들이 대다수이다. 원곡동의 다문화거리와 유사한 서울 이태원〮인천 차이나타운은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원곡 동은 내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 아닌, 전형적인 외국인 공간으로 이미지가 굳혀지고 있다. 원곡동이 이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앞에서 그동안 신문〮방송을 통해 비춰진 원곡동의 왜곡된 모습이 크게 영향을 주었다.



설 차례 및 원곡동 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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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진 원곡동에 대한 이미지

한국인이 가진 원곡동에 대한 이미지는 강력 범죄가 많은 무서운 곳, 쓰레기 투 기로 인해 비위생적인 곳, 주차 문제로 교통이 혼잡한 곳 등이다. 이런 이미지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면서 더욱 굳혀지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원곡동은 한국인이 두려워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원곡동 외국인에 대한 제재〮단속 등을 시작 하면서 이런 이미지는 더욱 굳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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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곳이라는 인식

이런 영향은 ‘외국인’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사람들 이목이 집중되는 점이 있 다. 원곡동의 대표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들이 나타난다. 먼저 범죄에 대한 문제이다. 원곡동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대부분 외국인과 관련한 범죄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곡동에서 발생하는 범죄 중 내국인 범 죄가 80% 이상이다. 즉 외국인 범죄는 20% 정도이다. 또한 소음, 가벼운 말다툼 등 경미한 사 건으로 발생하는 민원신고 등이 많고, 살인〮강도 등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곡동에서 발생한 범죄 중 외국인 관련 범죄, 특히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범죄들이 주로 강조되었다. 이런 결과로 원곡동이 외국인 범죄 발생률이 높고, 우범지대라는 이미지가 정착된 것 이다. 이런 문제로 안산시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원곡동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 들까지 원곡동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경기도 전체 외국인 범죄현황을 보면, 안산시에서 발생하는 범죄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 2014년 법무부 등록 외국인 현황 기준을 보면, 현재 경기도 거주 외국인 총수는 352,166명이다. 그 가운데 안산시 단원구가 44,570명으로 약 12.7%를 차지 한다. 그 다음이 화성시(29,968명), 시흥시(29,983명), 평택시(17,165명), 김포시(15,590), 수원시 팔달구(13,750명), 포천시(12,126명), 광주시(10,843명), 성남시 수정구(10,364명) 등 순이다. 인구수에 비해 안산시 단원구의 범죄율은 경기도 전체의 8.8%에 지나지 않고, 강력범죄인 살인〮강도의 경우 인구 비율과 비슷하게 12.7%를 차지한다. 그러나 안산 원곡동의 경우 주말〮휴일이 되면 전국에서 10만 이상의 외국인이 몰려드는 점과 평상시 유동인구가 7만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범죄 건수는 적은 편이다. 경기도 전체 범죄 현황 중 안산시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은 3.4%(244명), 2011년 5.6%(483), 2012년 8.4%(657명), 2013년 11%(960명), 2014년 8.8%(896명) 등으로 약간 의 증가 추세를 보이지만, 인구수를 고려하면 경기도 내 범죄현황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특히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외국인의 살인범죄의 경우 경기도 전체의 4%미 만이다. 안산시의 살인범죄는 미수를 포함하여 2010년 3건, 2011년 2건, 2012년 1건, 2013년 7건, 2014년 3건 정도이다. 안산시 외국인 범죄 유형별로 보면 폭력과 절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원곡동의 2013년 범죄현황을 보면 내국인이 1,359건, 외국인이 259건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전체 범죄 중 외국인 범죄는 16%에 지나지 않아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적은 편이다. 또한 범죄유형도 살인은 없고, 강간 1건, 절도 9건, 폭력 123건, 기타 147건 등으로 폭력과 기타에 집중되어 있다. 폭력사건은 음주로 인한 우발적인 사건이 다수를 차지한 다. 그러나 원곡동 범죄를 생각하면 외국인이 먼저 떠오른다. 이는 내국인 범죄보다 외국 인 범죄가 이슈 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봤을 경우 외국인 범죄가 훨씬 많은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원곡동은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내국인이 거주하기 힘든 곳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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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투기, 노점상 문제

두 번째로 쓰레기 투기, 노점상 문제이다. 쓰레기 투기는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주택지 골목이나 다문화거리 등에서 많이 보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산시에서는 경고문구〮현수막〮CCTV〮안내방송 등을 통해 불법 쓰레기 투기를 단속하고 있다. 특히 CCTV가 설치된 지역에는 사람들이 접근하면 자동적으로 한국어와 중 국어 안내방송이 나오고, 한쪽에는 “이 지역은 쓰레기무단투기 CCTV설치지역입니다. 쓰레기 무단투기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드립니다. 신고처 안산시청 청소사업소”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경고문구〮현수막 등에는 한국어는 물론 중국어〮영어〮러시아어 등 다국어로 표시해 각국의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산시는 이런 단속을 통해 내국인과 외국인의 갈등을 해소하려 하였으나 쓰레기 투기문제는 여전히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다문화거리 내에는 다양한 유형의 노점상들이 있다. 또한 다문거리내의 모든 상점들이 길 앞으로 확대하여 노점을 행하고 있어 주말이나 휴일이면 사람이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이다. 원주민, 외국인 모두 노점상에 대한 불만이 많다. 그 가운데 생선가게는 현장에서 생선을 다듬어 주어 내국인이 보기에 매우 비위생적으로 여긴다. 대야에 살아있는 잉어〮붕어 등을 파는 동포들도 있다.



다문화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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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차 문제

세 번째로 원곡동을 다니다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불법주차 된 차량이다. 원곡동다문화거리 인근의 도로는 1차선으로 불법주차 차량이 있는 경우 차와 사람이 지나가기어렵다. 상점 앞에도 고객들 차량이 불법주차 된 경우가 많아 보행자들이 다니기 힘들다. 원곡동 내의 불법주차 단속은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지다보니 그 효과가 떨어진다. 그밖에전봇대 등에 붙여진 무수한 인력광고 전단지는 경관을 헤쳐 다문화파출소 경찰들이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현재 쓰레기 문제는 안산시 청소행정과, 노점상은 건설행정과, 다방과 요식업 등은 위생과, 게임방은 문화체육과, 불법주정차는 경제과 등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단속으로만 해결되지 않아, 원주민과 외국인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원주민들은 외국인들이 유입된 이후 이러한 문제가 심화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며, 원곡동의 이미지 또한 위와 같은 문제들로 굳혀졌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들이 외국인 유입 때문만은 아니지만, 외국인들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고 확산되었기 때문에 원곡동에 대한 이미지가 위와 같은 방식으로 퍼져가는 것이다. 안산시, 원곡본동주민센터, 외국인주민센터 등 공공기간에서도 내국인과 외국인간의 갈등, 원곡동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형식적인 문제해결 보다 외국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문화와 본인들 나라의 문화를 잘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여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형식상 문제해결보다는그들의 문화, 삶의 모습 등을 파악하여 실질적 해결방법이 필요한 시기이다.



다문화거리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했다. 세월호는 주 4회 인천과 제주도를 왕복 운항하는 배였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자 안산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날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월호에는 단원고등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탑승하고 있었다. 이 배에는 총 탑승객 476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가 침몰 된 후 탑승객 476명에서 172명이 구조되고, 295명이 사망했다. 배가 침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안산에 있는 모든 공공기관들은 비상근무체제가 되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부모들은 버스를 타고 사고지역인 진도로 향했다. 진도에는 세월호 관련가족뿐만 아니라 단원고등학교, 정부 등 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였고, 각종 봉사단체들도 진도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가 늘어났고, 안산에 있는 모든 병원, 장례식장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정부에서는 4월 20일 안산과 진도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고, 안산〮진도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예정된 축제, 행사 등이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희생자들이 늘어날수록 안산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조문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안산시에서는 조문객들을 위해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임시분향소를 만들었다. 임시분향소가 만들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왔다. 안산시에서는 조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무료 셔틀버스와 임시분향소 이정표 등을 만들 었고, 분향소 안에는 국화꽃, 물 등을 마련해 놓았다. 안산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기념관으로 찾아왔고,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정부와 안산시에서는 화랑유원지에 합동분향소를 만들었다. 4월 16일을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안산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뀌었다. 올림픽기념관, 화랑유원지 등 안산 일대에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현수막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또한 세월호의 상징이 된 노란색 리본이 곳곳에 보였다. 합동분향소에는 유가족들과 각종 봉사단체 부스가 차려졌고, 각종언론사에서 온 사람들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합동분향소뿐만 아니라 단원고등학교에도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왔다. 단원고등학교 교문 한쪽에는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간식, 꽃 등 조문객들이 놓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단원고등학교 주변에는 노란색 리본이 묶여 있었다. 조문객들은 학생들의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한 분위기에서 조문을 했다. 학교 앞에도 희생자 유가족들이 있었다. 단원고등학교는 7월 쯤 학교 앞 리본, 편지 등 물건들을 정리했다. 학교에서는 다시 학교로 온 생존자들이 조문객들의 편지, 물건 등을 보고 받을 정신적 충격 등을 고려하여 물건들을 정리한 것이다. 합동분향소에는 세월호 구조작업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유족들이 머물고 있는 곳을 다시 정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문객수도 줄어들었으며, 봉사단체, 언론사 등에서도 관심이 줄어들었다. 거리에도 현수막들이 점점 사려졌고, 곳곳에서 축제 행사 등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선체인양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