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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 특구 동포가정 살림살이

주제 동포가정 김이고르 김올가의 살림살이
조사 살림살이 이야기, 공간과 살림살이, 사진, 통계, PDF

가족소개

김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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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올가는 1971년 11월 7일 출생하였으며, 고향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세르겔리(Sergeli)이다. 그녀는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김올가는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아이었다. 김올가는 초등학교 때 체조와 육상 등 여러 가지 체육 활동을 즐겼다.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 중학교 때는 2년 동안 육상 스프린트 선수로 활동했다. 육상 선수로 활동할 때는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유도를 잠시 배우는 등 그녀의 학창 시절은 스스로 말하길 ‘남자 같았던 시기’라고 한다. 그녀의 적극적인 자세는 안산에서 한국어 배우기, 춤배우기, 미용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남성스러운 성향이 여성스러움으로 바뀐 것은 대학을 진학하고부터 이다. 유도를 그만둔 뒤 살을 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헤어와 메이크업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1년 만에 대학을 포기한 뒤 헤어 전공이 있는 전문대학에 재입학했다. 전문대학 졸업 후 20살부터 미용실에서 일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미용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 중이며, 남편과 아들의 머리는 손수 잘라 준다.



고려인150주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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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고르

김이고르는 1967년 10월 26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인근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고려인으로 현지에서 농사를 지었다. 김이고르는 고향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소재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건축과 인테리어를 공부했다. 김이고르는 대학생활 중 20살이 되던 해 러시아 ‘치타(Cheetah)’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당시 현재의 러시아는 소련(소비에트연방) 체제로 김이고르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이지만 러시아 지역에서 군대생활을 한 것이다. 김이고르는 낯선 곳에서 군대생활을 하였고, 처음에는 추운날씨와 낯선 동료들과의 생활이 힘들었다. 하지만 김이고르의 친화력으로 동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으며, 2년간의 군대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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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과 스타스

첫째 아들 막심은 1992년 5월 11일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특히 학교를 들어가면서 수영, 첼로, 그림 등 예체능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배우고 습득해 눈에 띈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체능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우즈베키스탄 B-Boy 댄스팀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아들 스타스는 2002년 1월 1일에 태어났다. 스타스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아 이름을 김스타니슬라브로 지었다. 막심이 태어난 후 10년 만에 얻은 스타스는 김이고르 부부와 형 막심의 관심과 애정 속에서 컸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형인 막심과는 10살 터울이 나기 때문에 막심이 항상 스타스를 보살폈다. 형의 영향을 받아 비보이 댄스를 좋아하며, 초등학교 때 비보이 댄스를 직접 배우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 매년 열리는 장기자랑대회에서 비보이 댄스를 선보여 입상을 하기도 했다. 형의 영향으로 활동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스타스는 운동하는 것도 좋아해서 현재는 ‘고려인 유소년 축구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타스는 원곡초등학교 6학년 1반에 재학 중이다. 스타스는 2013년 엄마 아빠보다 조금 늦게 한국에 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양대역 근처에 있는 러시아학교에 다녔으나, 2013년 2학기 때 원곡초등학교 5학년으로 전학을 왔다. 축구를 좋아해 매일 수업이 끝나면 선부동에 있는 선부배수지나 선부고등학교에서 축구단원들과 축구연습을 한다. 김이고르 부부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가 자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일을 하고,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했다.



스타스 축구사진


부부이야기

결혼

1991년 2월, 김이고르와 김올가는 결혼식장에서 처음 만났다. 김이고르는 친구의 결혼식 하객으로, 김올가는 할머니와 함께 이웃의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했다. 김올가는 휴일을 맞이해 할머니 댁을 방문했고, 마침 마을에서 결혼식이 있어 할머니와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피로연 자리에서 김이고르와 김올가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첫 느낌이 좋았고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피로연 자리에서 만난 뒤 지속적으로 연락을 했고, 김이고르가 대학교 졸업을 한 뒤 1991년 7월부터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김이고르는 교제를 시작한 지 2달 만에 김올가에 청혼을 하였다. 김올가는 청혼을 받은 뒤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고, 이때 김올가의 아버지는 김이고르씨의 첫인상이 좋아 흔쾌히 결혼을 허락하였다. 두 사람은 부모님 상견례 후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결혼식은 1991년 9월 28일에 했고, 이 날은 김올가 아버지의 생일이기도 했다. 생일날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김올가는 느낄 수 있었다. 결혼식 장소는 김올가의 집에서 하고, 하루 전날 피로연을 했다. 이때 축하해주기 위해 온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음식대접을 했고, 아침까지 술을 마시면서 어울려 놀았다. 결혼식은 그 다음날 12시경에 시작했고, 약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김올가는 결혼식이 끝난 뒤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김이고르와 함께 시댁으로 갔다. 김올가는 시댁에서 맞이하는 첫날 아침 시댁어른들께 아침인사를 올린 뒤, 준비해온 선물을 드렸다. 처음에는 주변 환경이 낯설었지만 시부모님이 잘 대해주어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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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출산

김올가는 결혼 후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무척이나 기뻤다. 결혼 전부터 아이를 좋아했고, 원했던 아이를 가지게 되어 너무 행복해 했다. 김올가는 임신 중 입덧이 없어서 무슨 음식이든 잘 먹었다. 또한 첫째 아들 막심을 출산할 때 너무 빨리 낳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진통 없이 5분 만에 출산했다. 산통을 느껴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을 때 이미 아기가 나오려 했고, 병원에서도 급히 산모를 분만실로 옮겼다. 김이고르는 분만실로 들어가자마자 아기가 태어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둘째 아들 스타스를 출산할 때는 제왕절개를 했다. 출산 전 마지막 진찰 결과 다른 아기보다 너무 크기 때문에 자연분만을 할 수 없었다. 김올가는 수술이 너무 무서웠지만 아기를 위해서 감수해야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둘째 아들 스타스는 4.25kg, 키 59㎝인 우량아로 태어났다. 김올가는 스타스가 건강하게 태어난 이유를 당근이라 했다. 임신 중 유달리 당근을 많이 먹었는데, 이 때문에 스타스가 우량아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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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동에 정착하기

김이고르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학 때 전공을 살려 인테리어와 건축 관련된 일을 했었다. 그 일을 하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 기술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한국 기술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김이고르는 한국의 문화와 경제적 상황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김씨 성을 가진 기술자와는 형〮동생하면서 지냈고, 그 과정에서 성씨의 본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국 기술자들은 한국에서 같은 일을 하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김이고르는 한국에 관심을 가졌지만, 한국행에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김이고르가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은 김올가의 적극적인 동의때문이었다. 또한 김올가도 부모님에게 항상 한국인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컸기 때문에 마음 한 편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궁금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한국행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올가부부는 약 1년 정도의 준비 끝에 2011년 6월 한국에 오게 되었다. 처음 한국에 정착한 지역은 경기도 김포이었다. 그러나 올가의 김포 생활은 고단했다. 특히 한국 시골 화장실 때문에 ‘충격적이었다’라고 표현할 만큼 힘들었고, 한국말을 배우기 전이라서 마음 터놓고 지낼 친구도 사귀지도 못했다. 올가 부부가 안산시 원곡동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한 달 뒤, 남편이 직장을 안산으로 옮기게 되면서부터이다. 이때 올가도 반월공단의 가죽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 6개월 뒤에는 자동차 부품조립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조립회사에서 2개월 정도 일을 하다가 비자 갱신을 위해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동포들은 처음 한국에 올 때 단기비자로 와서 후에 4년 10개월의 장기비자로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곡동에서도 집을 세 차례나 이사를 했는데, 이는 원곡동 주거지가 전세가 없고 모두 월세로 운영되기 때문이며, 좋은 주거를 찾다보니 이사가 잦아진 것이다. 현재 생활하는 원룸은 방도 2개, 주방시설 및 냉장고, 에어컨 등이 비치된 새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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