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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의 섬에서 꽃게의 섬으로

주제 조기의 섬에서 꽃게의 섬으로
조사 살림살이 이야기, 사진, PDF

꽃게잡이의 섬, 연평도

연평어장과 꽃게 어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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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평어장 대연평도, 소연평도,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를 통칭해서 서해 5도라고 한다. 서해 5도는 북한과 인접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북한과 불과 몇 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있고, 우리 어선이 피랍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야간조업을 금하고 있다. 일출 후에 출항하여 일몰 직전에 입항을 해야 한다. 제한된 어로환경에 처한 서해 5도 어민들의 피해를 보상해 주는 차원에서 다른 지역의 어선이 침범하지 못하는 구역을 설정했다. 즉 서해5도 어민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서 일정 구역 내에서 외지 선박이 어로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2. 꽃게의 어획 및 유통 ㉮ 봄어기 꽃게 어획량 및 어획고 연평도에서 꽃게 어획을 하는 선박은 총34척이다. 닻자망 23척(대연평도 17척, 소연평도 6척), 안강망 6척(대연평도 4척, 소연평도 2척) 통발 5척(대연평도 4척, 소연평도 1척)이다. 이중에서 수리와 미운항을 제외한 2017년도 상반기에 실제 어로 행위를 한 선박은 31척이었다. 한샘2호와 같이 닻자망 조업을 하지 않고 자망조업만 하거나 수리하느라 조업을 하지 않은 경우이다. ㉯ 가을어기 꽃게 어획량 및 어획고 봄어기에는 암꽃게를 잡고, 가을어기에는 수꽃게를 어획한다. 봄어기에 잡는 암꽃게의 가격은 높게 형성되지만 잡히는 양은 적다. 반면 가을어기에 어획되는 수꽃게는 가격이 낮은 대신 봄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획되는 양은 많다. 암꽃게는 가을에 탈피를 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거의 없다. 그러나 수꽃게는 여름에 이미 탈피를 했기 때문에 껍질이 단단해 진 상태로 수정을 위해 활발히 움직인다. 움직임이 많은 수꽃게가 주로 그물에 걸린다. 이런 이유로 봄에는 알을 밴 암꽃게가, 가을에는 살이 꽉 찬 수꽃게가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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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자망

닻자망 어선을 어민들은 닻배라고 부른다. 꽃게가 지나가는 길목을 수백 미터에 달하는 긴 그물을 설치하여 꽃게가 그물에 걸리게 하여 어획한다. 이때 대형 닻 2개를 그물의 양 쪽 끝에 고정 시킨다. 조수의 흐름이 센 곳에 닻으로 그물의 틀을 고정하고, 부표를 띄워서 그물틀을 수직으로 세워서 어획하는 방식이다. 연평도의 닻자망 어선에서 사용하는 닻은 작은 편으로 몸체 길이 5.3m이다. 그물길이가 400m인 2개의 와이어로프를 상하로 연결하여 너비 2.3m 간격으로 버팀목(뻗침대)을 설치하고 이 부분에 그물을 부착한다. 부표를 이용해서 그물을 장벽처럼 세운다. 쇠파이프로 된 뻗침대는 자망어구에서 뜸줄과 발줄을 수직 방향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에서 주로 사용하며, 꽃게의 특성상 군집하여 조류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꽃게가 다닐 만한 물길을 가로 막아서 꽃게가 갇히게 하는 어획 방식이다. 닻자망은 어종에 따라 그물코의 규격은 달리한다. 새우를 잡을 때는 그물코가 촘촘한 것을 사용하고, 꽃게는 3중 자망을 사용한다. 꽃게를 잡는 어망은 낫으로 그물을 떼어내는 방식으로 1회 사용 후 폐기한다. 닻자망은 그물을 설치하면 어획기 한 철은 고정적으로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첫 출어가 중요하다. 금어기가 풀리는 날은 다른 어선에 비해 좋은 위치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엔진 성능이 좋고, 스쿠루가 두개 달린 선박이 유리하다.



선박에서 닻자망을 끌어올리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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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망

일제강점기까지 중선배를 이용해서 조기를 잡다가 일본에서 일중선이 도입되어 기계식 안강망어선으로 대체되었다. 안강망 어업은 정치성구획어업의 한 종류이며 조류가 강한곳에 설치하여 어획하는 강제 방식을 취한다. 물살에 의존하는 어획 방식이므로 물살이 센 사리 때 주로 어획을 하고 물살이 거의 없는 조금 때는 물보기 작업을 하지 않는다. 대형 안강망 어선은 목포, 여수, 군산 등지에서 조업을 많이 한다. 연평도는 소형 안강망 어선으로 속칭 뺑뺑이라고도 한다. 연평도의 안강망 선박은 10톤 이하이며 보통 9.5톤~9.9톤 이고, 선원은 7명~8명이 승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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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발

통발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가 저술한 임원경제지(林圓經濟志)에 ‘통렴’, 2장 ‘어전’으로 통발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이미 전통방식의 통발을 만들어서 사용했음을 알 수가 있다. 현대의 통발은 원통형 골격에 그물망을 씌워서 만든다. 어류가 들어가는 입구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져서 안으로 들어간 물고기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만든다. 통발 안쪽에는 플라스틱 재질의 미끼 통을 매달아서 미끼에 대한 반응이 민감한 어종을 대상으로 어획하는 방식이다. 통발어업은 연안통발·근해통발·원양통발이 있다. 연평도의 통발어업은 연안통발에 해당한다. 연평도에서는 통발로 꽃게, 박하지, 낙지를 주로 잡는다. 봄·가을에 투망하고 닻자망과 안강망에 비해 일찍 철망을 한다.



조기는 사라지고

조기로 넘치던 시절

연평어장은 흑산어장, 칠산어장과 함께 조기 3대 어장이다. 이외에도 조도어장, 녹도어장, 대화어장 등이 있다. 양쯔강 동중국해의 모래펄에서 겨울을 난 조기가 북상을 한다. 북상하는 조기를 따라서 조기잡이 어선도 뒤를 따른다. 대화어장을 거쳐서 발해만과 압록강 하구까지 올라간 조기는 다시 왔던 경로를 따라서 동중국해로 내려가서 월동을 한다. 북상할 때는 산란을 하기 때문에 한 지역에 1개월~2개월 간 어획을 할 수 있지만 남하할 때는 특정해역에 머무르지 않고 곧장 이동한다. 조기는 곡우와 입하의 두 사리 때 잡힌 것을 상품(上品)으로 쳤기에 연평도에서 잡히는 조기를 최상으로 인정해주었다. 조기를 잡아서 항구에 들어오면 상선에서 곧바로 조기를 구입하여 해안가에 즐비한 간통이라 불린 조기간에서 염장을 하여 콩자갈밭에서 조기를 말렸다. 유자망에서 광어, 서대, 꽃게 등이 잡혔으나 잡어 취급을 했다. 그 시절 연평도에서는 조기 외에는 물고기로 생각하지도 않아서 많이 버렸다고 한다. 버린 물고기는 동네 아이들이나 아낙네들이 찬거리용으로 건조를 시켰다.



조기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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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흔적을 찾아서

연평도는 매년 4월 하순이면 회귀성 어류인 조기 어군이 북상하여 연평어장에 산란을 했다. 조기떼를 따라서 북상한 1500여 척에서 많게는 3천여 척의 어선과 수만 명에 달하는 선원, 이들을 따라다닌 상인과 술집 작부들이 모여서 조기 파시촌이 형성되었다.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조기떼가 산란하는 4월 하순에서 6월 상순까지 약 50일간 일시적인 어시장이 열리는데 이를 조기 파시라 일컫는다. 50일간 연평도는 장사진을 이뤘다. 유흥업소, 음식점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술집에서 일하는 작부와 술에 취한 선원, 매일 밤 벌어지는 투기판, 이를 노리는 사기꾼들까지 모여 들었다. 조기 파시 기간에 단오가 돌아오는데 매년 단오행사를 크게 했다. 씨름대회는 전국의 장사들이 모여서 힘을 겨루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 일본, 중국의 어선과 선원들이 연평도에 모였다. 일본 어부들은 주로 일본인이 운영하는 유곽을 이용했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에서 직접 하꼬방을 짓는 재료를 조달했으며 파시가 끝나면 해체해서 가져갔다. 연평도 주민들은 조기파시 50일 일해서 1년을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 폐해도 만만찮았다.



넓고 넓은 갯벌에서

갯벌 채취

연평도의 주민들은 갯벌에서 굴, 바지락, 낙지, 망둥이, 소라 등 맨손어업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맨손어업이란 손으로 낫, 호미, 해조틀이 및 갈고리류 등을 사용하여 수산동식물을 포획·채취하는 어업을 말한다. 연평도 주민들은 굴, 바지락, 낙지, 소라는 잡아서 판매를 하고, 망둥이는 농어 낚시미끼로 사용한다. 굴은 연평도 주민의 생계에 가장 중요한 수산물이다. 다음으로 바지락, 낙지, 각종 고둥류 등인데 수익은 미미하다. 연평도의 대표적인 해산물로 꽃게가 유명하다. 대연평도에서 꽃게를 어획하는 어선은 닻자망 어선 17척, 안강망 어선 4척, 통발 어선 4척이다. 그런데 이들 어선에서 일하는 선원들 대부분은 외지인이다. 꽃게 어획기가 끝나면 육지로 나갔다가 어획기에 잠깐 들어온다. 꽃게 어획이 연평도 주민들의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의외로 크지 않은 이유이다. 꽃게 어획을 통해서 일부 선주들은 부를 축적하지만 연평도 주민의 삶에 끼치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미미하다. 반면 갯벌에서 나오는 경제적 총액은 미미하지만 모든 연평도 주민의 옷을 골고루 적셔주는 것은 갯벌이다. 즉 꽃게가 많이 어획되면 선주, 선원, 운송업자, 중개업자, 수많은 소비자가 두루 이익이다. 다만 지역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크게 끼치지 않는다. 다수의 지역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갯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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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류 양식

1. 김양식 김은 바위나 돌에 붙어서 자라는 홍조류 보라털과이다. 늦가을에 돋아서 한겨울에 한창 자란다. 김 양식은 크게 부류식과 지주식으로 나눌 수 있다. 부류식은 수중에서 생장시키는 방식으로 지주식보다 생산량이 2~3배 높은 장점이 있다. 반면 규조류(硅藻類), 잡조류(雜藻類)가 많이 섞인다. 따라서 규조류와 잡조류를 제거하기 위해서 유기산을 사용하고 있다. 유기산은 무기산에 비해 가격이 높아서 불법적으로 무기산을 사용하는 어민이 더러 있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부류식 양식은 15일 간격으로 채취를 한다. 지주식 양식은 썰물 때 물 밖으로 노출이 된다. 하루에 두 번 노출이 되면 파래와 매생이 등 잡조류와 규조류가 자라지 못해서 깨끗하고 색깔도 좋은 김이 생산된다. 반면 물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지주식에 비해 생산량이 현저히 떨어진다. 2. 미역 양식 연평도에서 미역양식은 전복 사료용으로 시작을 했으나 전복이 사라지면서 식용으로 전환을 하게 되었다. 연평도 어민들은 북한에서 해안 모래를 채취하면서 펄이 차기 시작했고, 그 후로 전복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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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이와 안목어장의 주목망

1. 개막이 개막이는 갯벌을 막아서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해안에 접근한 어종을 차단하여 잡는 일종의 정치성 어업이다. 건간망(建干網) 혹은 건강망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건강망, 덤장, 주목 등으로 혼용해서 부른다. 고정목을 갯벌 바닥에 박고, 고정목 상부에는 윗줄, 하부에는 아랫줄을 묶어 팽팽하게 한다. 그리고 몸그물을 설치하여 어군의 길목을 차단하는 그물을 둘러친다. 몸그물 하단 군데군데에 어획한 물고기를 수거하기 쉽도록 자루그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주요 어획 어종은 숭어, 조기, 전어, 꽁치 등 어군을 형성하여 해안에 접근하는 어종이다. 2. 주목망 안목어장은 주목망(柱木網)이다. 연평도의 주민들은 주목망, 건강망, 안강망, 어살, 덤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른다. 그물을 설치한 방식이 건강망과 유사하고 연평도 갯벌에 건강망이 많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구분하지 하고 통칭하여 부르는 것이다. 연평도는 조기를 많이 잡던 시절부터 안강망 어선이 많았는데 안강망 그물형태와 유사하여 안강망이라 부르는 주민도 있다. 바닥에 말장을 박아서 그물을 설치한 후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어획하는 방식은 건강망과 동일하지만 그물의 형태는 안강망과 유사하다. 심지어 어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는 조기전시관과 마을 벽화에 과거 안목어장에 어살어법으로 조기를 잡았다는 설명이 있어, 이를 접한 주민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일부 민속학자들도 연평도 생업조사를 왔다가 주민들의 구술에 의존하여 민속지를 작성하면서 어살로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안목어장은 역사적으로 어살이 유명한 지역이었기에 어로방식에 대한 지식이 없는 학자들에 의해서 아직도 어살로 기록되기도 한다. 물론 과거에는 안목어장의 어살이 유명했다. 임경업 장군이 청나라를 치기 위해 명나라로 가던 중 안목과 모이도 사이에 가시나무를 꺾어 꽂아 두게 하였다. 사리 때 안목과 모이도 사이를 지나던 조기떼가 가시에 찔려서 잡혔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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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때와 연평도 주민의 생활

서해는 조차가 3m~9m로 밀물 때와 썰물 때의 고저의 폭이 크다. 반면 동해안은 20~30cm에 불과하고, 남해안도 1~2m 정도이다. 서해안의 조차는 캐나다 동부 해안, 영국 동부 해안과 함께 세계에서 조차가 큰 해안에 속한다. 그만큼 물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반면 동해안의 어촌은 물때의 영향이 적은 지역이다. 어민들조차 물때에 무관심하고 물때에 대한 개념도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동해안은 물때보다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북동풍, 남동풍, 북풍일 때는 파도가 높아서 조업이나 물질을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남서풍, 북서풍, 서풍은 건조한 바람으로 미역 등 해조류 건조 좋은 바람이기 때문에 어민들이 반긴다. 서해안의 어촌 주민들은 물때에 따라 바다로 나갔다가 물때에 맞춰서 육지로 들어온다. 가구마다 걸려 있는 달력은 물때가 표기된 달력 일색이다. 서해안에서 물때를 모르고는 제대로 생활할 수 없다. 서해안 주민들에게 물때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상점, 식당, 사무실은 물론이고 개인 가정마다 물때식이 표기된 달력은 필수품이다. 동해안에는 물때가 표시된 달력보다는 경치나 그림달력이 주를 이루는 반면 서해안은 날짜와 그에 따른 물때가 빼곡하게 기입된 달력이 주를 이룬다. 그만큼 물때를 모르고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때식이 기입된 달력은 수협중앙회나 공판장에서도 제작하여 배포하기도 하고, 상가 주인이 홍보용으로 제작하여 배포하는 경우도 많다. 맨손어업을 하는 어촌계 주민들은 갯벌에 나갈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을 알아야 하고, 선주와 선원들은 물때에 맞춰서 투망과 물보기를 하고, 공판장의 상인과 생선을 구입하려는 주민들은 물때를 알아야 좋은 물고기를 구매할 수 있다. 1. 물때의 기본 개념 서해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길며 북쪽은 육지로 둘러싸여 막혀 있고 아래는 터진 반폐쇄적인 지형과 평균 수심이 약 50m에 불과하다. 그래서 북쪽으로 갈수록 조차가 더 커진다. 서해에서 관찰되는 3m 이상의 조차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대조차 환경이다. 물때의 기본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6시간 12분 단위와 하루 단위의 물때, 15일 단위의 물때에 관한 것을 알아야 한다. 2. 연평도 어민들의 물때 활용 물때는 달과 태양의 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어촌에서의 물때는 보다 복합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물때는 주민들의 생활에 다양한 방면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해5도의 어로환경과 어장

상반된 어로환경과 어종

연평도는 수심이 얕아서 어업이 제한된다. 3월에서 11월까지 조업을 하고 12월에서 다음해 2월까지는 모든 어선이 휴업을 한다. 따라서 겨울철 연평도는 생선 구경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섬이다. 반면 대청도와 백령도는 수심이 깊어 겨울에도 조업이 가능하다. 까나리는 백령도와 대청도에서 잡히고, 연평도에서는 어획하지 않는다. 연평도의 안강망 어선은 꽃게를 잡는데 비해 대청도의 안강망 어선은 홍어와 우럭 등을 주로 어획한다. 연평도와 대청도에서 잡히는 어종이 전혀 다른 이유는 어장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평도는 수심이 얕고, 갯벌이 많은 지역이고, 대청도는 수심이 깊고 모래가 많은 지역이다. 이러한 생태환경의 차이가 어종의 차이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자료를 살펴보면 대청도와 연평도의 수산물 차이를 명확히 알 수가 있다. 비교의 편의를 위해서 원자료에서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에 어획되는 수산물 목록만을 발췌하여 재편집하였다. 연평도는 조기, 삼치, 가자미, 상어, 민어, 가오리, 갯장어가 많이 잡히고, 대청도는 멸치, 대구, 상어, 방어, 고래 등이 주로 어획되었으며 가시리, 미역, 김 등의 해조류도 많이 채취했다. 백령도는 가오리 외에는 특별한 어종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사실 백령도는 까나리, 조피볼락, 노래미, 점농어, 팔랭이(간재미), 참홍어, 숭어, 꽃게 등 다양한 어종이 어획되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 백령도어장은 대청어장과 연평어장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은 듯하다. 이렇듯 서해5도의 어획어종이 다른 것은 서식환경의 다름이 원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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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1. 주요 생업 대연평도의 면적은 7km²이고, 해안선은 16.6km이다. 소연평도는 0.24km²이고, 해안선 길이는 5.5km으로 서해5도 중에서 가장 작은 섬이다. 현재 연평도의 주요 어획어종은 꽃게, 농어, 광어, 장태, 망둥이, 낙지, 곤쟁이, 주꾸미, 삐뚜리(피뿔고둥), 숭어 등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기와 함께 곤쟁이가 주요 어족자원이었다. 정진섭(남, 1923년생)에 의하면 4월말에서 6월초까지 조기잡이가 끝나면 7월과 8월은 500척~600척의 새우잡이 어선이 연평어장에서 어획을 했다고 한다. 조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민어, 먹갈치, 삼치, 상어, 홍어, 갯장어, 방어, 복어 등 어족자원도 풍부했다. 그러나 현재 연평도 해역에서 거의 잡히지 않는 어종이 되었다. 전복, 해삼, 성게를 채취하기 위해 제주도 해녀를 데려 올만큼 지선어장의 해산물 역시 풍부 했으나 지금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2. 주요 어획 어종 현재 연평도의 주요 어종인 농어와 광어는 대청도·백령도에 비해 씨알이 굵은 대형 농어(따오기급 : 1m 이상)와 대광어가 많이 잡힌다. 반면 우럭과 노래미는 대청도와 백령도의 씨알이 훨씬 크다. 연평도에서는 점농어가 90% 이상 잡히고, 간혹 민농어가 잡힌다. 반면 대청도는 민농어가 주로 서식한다. 연평도는 수심이 얕고, 뻘로 되어 있어서 점농어가 활동하고, 대청도는 수심이 깊고 모래와 암반으로 되어 있어서 민농어가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연평도에서 어획되는 물고기 중 첫 손가락으로 점도다리를, 다음으로 범가자미와 돌가자미, 준치를 쳐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잘 잡히지 않는 어종이 되었다. 연평도 바다는 수심이 얕아서 많이 움직이고, 갯벌의 플랑크톤이 많아서 고기 맛이 한층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반면 대청도의 바다는 수심이 깊어서 활동량이 적고, 물이 맑아서 고기 맛이 싱겁다고 한다. 연평도 주민들의 연평도산 어류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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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

1. 주요 생업 6장 대청도의 면적은 12.63km²이고, 해안선 길이가 24.7km이다. 백령도의 약 1/4정도 규모이다. 산지가 많고 북부 내륙에 약간의 농지가 있다. 주업은 어업이다. 주민은 1,300여 명이다. 인천항으로부터 약 171km 떨어져 있다. 2. 고래 어획 6장 대청어장은 예전부터 젓새우, 곤쟁이, 까나리, 청어 등 고래의 먹이가 풍부했으며, 그 먹이를 찾아 온 고래를 포획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대청도는 청어 잡이와 고래 포획으로 유명했다. 1883년 일본은 조일통상장정으로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의 연안 어로권을 획득하고, 1904년 황해도, 평안도, 충청도까지 어업권이 침탈되었다. 1910년 이후 연평어장, 대청어장 등이 알려지면서 일본은 대청도를 서해안 고래잡이의 전진 기지로 활용하였다. 그리하여 1915년에 동경포경회사가 설립되었다. 대청도에서는 겨울에서 봄까지 고래를 잡았는데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어민이 포경권을 독점했다. 주로 참고래를 어획했는데 잡은 고래는 포항으로 운송되어 시모노세키로 수출되었다. 아래의 자료를 보면 26년부터 31년까지 41마리에서 85마리까지 잡히던 고래가 32년부터 현저히 줄었다. 고래가 잡히지 않게 되자 광복이후에는 상어와 조기, 까나리를 주로 어획했다. 상어 어획은 60년대 이후로 중단되었다. 1970년~80년대에는 홍어 어획에 주력하게 된다. 3. 상어 어획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 제1권 인류(鱗類)에 다양한 상어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자산어보에서는 기름상어, 참상어, 게상어, 죽상어, 비근상어, 왜상어, 병치상어, 줄상어, 모돌상어, 저자상어, 귀상어, 사치상어, 은상어, 환도상어, 극치상어, 철갑장군, 내안상어, 총절입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상어를 어획했음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에 상어는 대청어장의 주요 어획 어종이었다. 이후 1960년대 초반까지 상어를 많이 잡았다. 4. 홍어 어획 홍어는 1월초부터 5월 중순 경까지 어획을 하는데 섬 외곽의 절벽에 진달래꽃이 필 무렵 본격적인 홍어 어획기에 들어선다. 4월과 5월 중순까지 가장 많이 잡히는데, 옥죽동에서 북쪽바다로 나가서 홍어를 잡는다. 홍어의 주산지로 알려진 흑산도보다 대청도에서 홍어 어획량이 많을 때도 있다. 목포 등지로 배송되어 흑산도 홍어로 둔갑하기도 한다. 대청도에서는 흑산도, 목포 등지와는 달리 홍어를 삭혀서 먹지 않는다. 주로 홍어회, 홍어무침, 홍어찌개로 먹는다. 대청도는 10톤 미만의 건주낙 어선 7척~8척이 홍어를 어획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잡은 홍어는 소금에 절여서 판매를 하였다. 과거 대청도에서 목포까지 발동선으로 30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기 때문에 소금에 절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운반선에 싣고 목포로 가거나 택배를 이용해서 배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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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1. 주요 생업 백령도는 46.3km²로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매립하여 간척지로 만듦으로써 8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현재는 면적이51.09km²로 늘었다. 백령도는 인천으로부터 228km 떨어져 있는데 반해 북한의 황해도와는 17km이다. 2017년 2월 기준으로 인구는 총 5,744명(남 3,439명, 여 2,305명)이다. 가구는 총 3,244가구이며 섬으로는 특이하게 어가 10.8%, 농가 27.3%, 기타 62%이다. 백령도는 농업과 관광업이 주생업이라 할 수 있다. 농지는 468ha이며 매년 3,600톤 내외를 생산한다. 이는 백령도 주민이 3년간 소비할 수 있는 분량이다. 생산된 쌀의 약 80% 가량은 정부가 수매를 하고, 나머지 20% 내외는 주민이 소비를 한다. 수매한 쌀은 해병대에서 소비를 하고 나머지는 해군 함정을 이용하여 평택으로 수송을 한다. 백령도는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연평도와 대청도가 해병대 장병 면회객이 주를 이룬다면 백령도는 면회객 외에도 순수 관광객의 비중이 높다. 두무진(명승 제8호), 사곶해변(천연기념물 제391호), 콩돌해안(천연기념물 제392호), 감람암 포획 현무암 분포지(천연기념물 393호), 물범(천연기념물 331호), 남포리 습곡구조(천연기념물 507호), 백령도 담수호,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중화동 교회(1896년)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 섬이다. 연간 7만 여명의 관광객이 백령도를 찾고 있으며, 겨울 비수기를 제외하면 매일 200여 명 내외가 고속여객선을 통해서 입도한다. 남북 분단과 함께 어로활동을 할 수 있는 바다가 나뉨으로써 백령도는 농업 중심의 섬으로 변모했다. 특히 주어종인 홍어가 백령도 근해에 많이 잡히지만 잡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백령도 어민들은 어로 구역 확대를 희망하고 있다. 백령도와 근거리에 있는 대청도와 소청도는 상대적으로 남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어획할 수 있는 어장의 규모가 백령도에 비해 큰 편이다. 2. 주요 어획 어종 백령도에서 어획하는 어종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어종은 까나리이다. 까나리는 40년 전부터 백령도에서 본격적으로 어획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쥐노래미와 조피볼락, 점농어, 팔랭이, 참홍어, 숭어, 비투리(소라), 꽃게, 갯장어 등이다. 노랑가오리를 백령도에서는 팔랭이, 연평도와 인천 등지에서는 간재미라 부른다.



연평어장의 특수성

북방한계선(NLL)과 연평어장

북한의 영토에 속한 석도는 무인도이다. 석도는 미력리도로 불리기도 한다. 이 무인도와 연평도 긴작시 해안 간의 거리는 불과 1.69마일(3km)이다. 북방한계선과 긴작시 해안의 최단거리는 1.5km이다. 연평도에서 닻자망으로 꽃게를 어획하는 진흥수산은 3척의 닻자망 어선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원 중에 한명이 가장 좋은 선박의 키를 몰래 훔쳐서 월북하는 일이 발생할 정도로 북한과 인접해 있다. 서해5도 해역은 북방한계선 NLL(Northern Limit Line)을 경계로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NLL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는 선이지만 실효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경계선이다. 연평도 해역은 북한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꽃게 어장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양측의 신경전,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으로 항상 군사적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지역이다. 1996년에 한국전쟁 이후 남북 간에 벌어진 첫 해전인 제1차 연평해전과 2002년에 발발했던 제2차 연평해전, 그리고 2010년에 있었던 연평도 포격전은 연평 해역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민감한 지역인지를 방증하는 예이다. 연평도 주민들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DMZ보다 위험한 화약고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NLL 일대는 1·2차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사건 등 그동안 남북간에 고강도 충돌이 빈번히 발생한 수역이다. 1. 1차 연평해전 한국전쟁 이후 남·북 간에 벌어진 첫 해전이다. 1999년 6월 15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측이 연평도 근해에서 한국 함정에 선제사격을 가하여 연평도 서방 10km 해상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충돌 이전에 북한 측 경비정이 6월 6일부터 매일 북방한계선을 넘어와서 한국 측의 반응을 살피다가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후 15일 오전 북한의 경비정 4척이 꽃게잡이 어선 20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남쪽 2km 해역까지 내려왔다. 이에 한국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으로 대응하였다. 북한의 경비정에 천체를 충돌 시켜서 밀어내는 방식으로 공격을 가하였다. 공격을 받은 북한 경비정은 기관포로 선제사격을 가해왔고, 북한 어뢰정 3척도 공격에 가담했다. 한국 해군도 응사를 하여 교전이 벌어졌다. 교전 결과 북한 어뢰정 1척과 중형 경비정 1척이 침몰되고, 경비정 3척도 크게 파손된 채 퇴각했다. 북한 측의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 측은 장병 7명이 부상을 당하고, 고속정 1척과 초계함 1척의 선체 일부가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2. 2차 연평해전 두 번째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무렵 일어났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이다. 1차 연평해전이 일어났던 지역에서 3년만에 다시 남북 간의 해전이 벌어졌다. 2002년 6월 29일 오전 북한 경비정 2척이 남한 측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였다. 이에 한국 해군의 고속정 4척이 대응에 나서 초계와 동시에 퇴거 경고 방송을 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경비정이 갑자기 선제 포격을 가하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에 명중하였다. 이때부터 양측 함정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었다. 인근 해역에 있던 한국 해군고속정과 초계정이 교전에 합류하였다. 이어 10시 43분경 북한 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발생하자 나머지 1척과 함께 퇴각하였다. 10시 50분경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상함으로써 교전은 25분 만에 끝이 났다. 제2연평해전으로 한국 해군은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초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하였다. 그리고 19명이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한국 해군의 참수리고속정 1척이 침몰하였다. 북한 측 피해 상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3. 연평 포격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과 오후 3시 12분, 두 차례에 걸쳐서 연평도에 200여 발의 포격을 가했다. 우리군도 이에 대응하여 K9 자주포로 북한의 무도 해안포 진지와 개머리 해안포 진지에 각각 50발과 30발의 사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서 남한쪽의 피해는 군인(전사 2명, 부상 16명), 민간인(사망 2명, 부상 44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건물은 292동 파손(전판 49, 반파 1, 일부파손 242), 산림 47ha 소실, 전기 및 통신시설 일부 파손 등 물적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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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선과 서해5도 특별경비단

불법 중국어선은 그물코가 작은 어구를 사용하여 쌍끌이 방식으로 바닥을 끌어 어족자원을 고갈시킨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수백 척이 몰려온다. 낮에는 NLL 북쪽의 대청도 인근 해역에서 조업을 하다가 밤에 어둠을 틈타서 연평도 인근까지 내려와서 조업을 한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으로 피해가 증가하자 서해5도 어민 300명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정부가 막지 못해서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 소송은 2006년 2월 원고 패소 판결이 났다. 뿐만 아니라 석도 인근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을 어민들이 나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첫 번째는 2005년 5월 연평도 어선 30여 척이 연평도 북서쪽 0.6km 지점에서 중국어선 4척을 나포하였다. 두 번째는 2016년 6월 5일 4시 53분경 연평도 어선은 5척은 서해 NLL 남방 0.3해리(약 560m) 해상에 정박해 있던 중국어선 2척(15톤, 22톤)을 나포했다. 중국어선 2척은 새벽 시간대에 조업을 멈추고 잠을 자고 있었다. 연평도 어민들은 2척을 예인하던 중 급파된 해경 경비함정 2척과 특공대 고속단정 1척에 인계했다. 중국인 선원은 11명이었다. 해양경비안전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불법 침범한 중국어선 수는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78% 감소했다. 봄철 꽃게 어획기인 4월에서 6월까지 중국어선이 하루 평균 200~300여 척이 출몰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줄었다. 4월부터 6월까지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에 출몰한 중국 어선이 한 척도 없는 날이 더 많을 정도였다. 중국어선의 출현 횟수와 출현 선박이 현저히 줄어들자 연평도에서 활동하는 서해 5도특별경비단 대원들은 대민지원 활동을 수행했다. 선박의 스크루가 그물에 감기면 대원들이 직접 잠수하여 그물을 잘라내는 활동 등을 통해서 대민지원을 꾸준히 수행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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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 해양경찰

연평 해양파출소장은 상근을 하고, 해양경찰이 2교대로 2명씩 연평도에서 근무를 한다. 의경은 2명이 배치되어 업무를 보조하고 있다. 연평 해양파출소의 주요 업무는 선박 출입항 관리, 조업구역 외 지역으로의 선박 출입 통제, 해상 범죄 단속, 여객선 안전관리, 안전조업 교육, 선박 검사 등이다. 백령도는 어선의 출입항 관리를 군부대에서 맡고 있으나, 연평도에서는 일반적인 사항은 해양파출소에서 관리를 하고, 특수한 상황만 군부대에서 관리를 한다. 어업지도선은 인천201호(1,000톤급), 인천216호(500톤급)이다. 연평도에서는 어업을 하는 선박에는 정부지원으로 VPS(선박포털서비스)를 설치하여 선박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간혹 어업 허가권역을 이탈하여 불법조업을 하는 선박이 있다. 이럴 때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VPS를 끄는 경우가 간혹 있다. 불법조업 적발시 300만원~400만원의 벌금과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서해 어로한계선 또는 자제선을 넘어 조업하거나 항해한 경우, 1차 위반은 정지 30일, 2차 위반은 정지 60일, 3차 위반은 정지 90일이다. 정지처분기간을 합산한 일수가 150일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어획물운반업등록을 취소하거나 해기사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서해특정해역 안에서의 어업별조업구역 및 조업기간을 위반하여 조업한 경우, 1차 위반시 정지 30일, 2차 위반시 정지 45일, 3차 위반시 정지 60일이다. 선박안전 조업규칙에서 관련 항은 다음과 같다. 제9조(출항·입항 신고기관의 설치) 2항. 신고기간은 출항·입항 신고소 및 출항·입항 대행신고소로 구분하여 설치하며 관할 해양경비안전서장이 지휘·감독한다. 제14조(관할 군부대장의 통제) 제9조2항에도 불구하고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및 강화도에 설치되어 있는 신고기관은 선박의 출항·입항 및 조업에 관하여 그 지역의 관할 군부대장의 통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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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항

연평도의 축항 시설은 연평도어장번영회에서 주도하여 1947년에 착공해 1948년에 완공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동방파제는 1949년에 착공하여 1970년대 초에 완공되었다. 방파제 공사를 할 때에는 수백 명의 중국인들이 인부로 일을 했다. 중국인 인부들끼리 종종 싸우기도 하고 살인사건도 나서 연평도가 소란스러웠다고 한다. 방파제 공사를 위해 산을 깎아서 골재를 넣었는데 막바지에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인동막이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연평항은 국가관리연안항으로 관리는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소관이다. 소연평항은 지방어항으로 인천광역시에서 관리한다. 연평도 출입화물은 항운노조에서 관장하고 있다.



연평도의 해양신앙

충민사

임경업 장군을 처음으로 조기잡이 신으로 모신 곳이 연평도이다. 임경업장군을 모신 충민사 입구와 파시골목, 조기전시관 등 연평도 곳곳에 세워진 안내판을 통해서 그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장군은 실존인물이 신으로 모셔진 경우에 해당한다. 임경업 장군이 신으로 좌정된 것은 조기잡이와 연관되어 있다. 인조21년(1643년) 5월 27일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 갔다. 이에 임경업 장군이 병사들과 함께 세자를 구하기 위해서 청나라로 가던 중 물과 식량이 떨어져서 연평도에 상륙하였다. 병사들에게 연평도의 가시나무를 베어 모이도(모은이)와 안목 사이의 바다에 꽂아두게 하였다. 간조에 가시나무를 꽃아 둔 바다로 나가보니 조기가 가시나무에 수도 없이 꽂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가시나무’는 구술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엄나무라 하는 사람도 있고, 뽀르세나무 혹은 아카시아나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의 조기역사관에서 내려다보이는 꾸지도(구지도)라는 섬의 가운데를 팠더니 단물이 나와서 식수를 확보했다는 이야기가 더해지기도 한다.



충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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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평도 대동굿

대동굿은 마을주민이 주체가 되어 치르는 굿으로 매년 봄, 가을에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동굿을 했다. 연평도에서 1980년대 이전까지는 성대하게 대동굿을 열었다. 대동굿 외에도 연평도에 정박하는 수많은 선박에서 뱃굿을 지내는 등 하루에도 여러곳에서 굿판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요즘은 연평도 주민들 대다수는 교회와 성당을 다니고 있어서 연평도에서 굿을 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2010년부터 연평도 출신의 만신인 유정희와 그의 남편 나대형에 의해 대동굿 명맥을 살려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유정희의 고향은 연평도이고 지금도 부모님과 자녀, 동생 등이 연평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