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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민속지

주제 덕수리 민속지
조사 서귀포 덕수리 이야기, 사진, PDF

땅의 생김새와 이용

위치와 입지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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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는 안덕면에 속하는 12개 행정리(법정리로는 10개) 중 하나로 안덕면에서 남서쪽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덕수리를 중심으로 보면, 동쪽으로는 같은 면지역(面地域)의 화순리와 상창리가, 서쪽으로는 대정읍의 안성리와 구억리가, 북쪽으로는 서광서리와 서광동리가, 그리고 남쪽으로는 사계리가 자리잡고 있다. 덕수리를 거리적 관점에서 보면, 서귀포시 신시가지(시청 앞 기점)로부터는 약 21km, 제주시 중심부(도청 앞 사거리 기점)로부터는 약 64km 정도 떨어져 있다. 더불어 시간적 거리로 보면 서귀포시로부터는 약 20여 분, 제주시로부터는 1시간 이내로 연결된다. 덕수리는 지리적인 위치로 볼 때 제주도 내에서도 전형적인 중산간 지역의 농촌에 해당된다. 그런데 현시점에서는 마을 주변에 연결되는 12번 국도와 95번 국도를 비롯하여 마을 중심부를 관통하는 31번 군도 등의 확장으로 많은 변화를 맞고 있는 마을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덕수리 주변은 모두가 마을과 마을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비록 바다와의 접촉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주변 마을과의 생활교류는 활발하게 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 특히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제주도내의 거의 모든 도로와 교통조건이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덕수리의 주민들은 일상생활에서 상당히 불편한 점들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주변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는 모든 가정이 안정된 생활을 영위케 하는 안정제와도 같았다. 덕수리의 수리적 위치는 아직까지 정확히 파악된 자료가 없다. 그러나 1:25,000 지형도를 이용하여 대체적으로 동서남북의 끝지점을 정리해 보면, 먼저 극동은 화순리와 상창리와 서광동리가 서로 만나는 지점으로 대체로 ‘논오름(화순리 소재의 기생화산, 186m)’의 북서쪽에 해당된다. 이 지점을 1:25,000 지형도 상에서 보면, 현대아스콘(주)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며, 그 주변에는 밭과 초지가 전개되고 있다. 극서는 대정읍 안성리와의 접경지구로서, 95번 국도인 서부관광도로와 덕수리로 연결되는 작은 도로가 만나는 지점이 되고 있다. 이 극서가 되는 지점 주변은 주로 밭과 과수원이 전개되는 경관이다. 극남은 사계리의 한 자연마을인 용해동과의 접경지구로서, 더욱 구체적으로는 덕수리와 사계리를 상하로 연결되는 도로에서 동쪽의 사계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폭이 아주 좁은 소형차로상의 한 지점이다. 극남이 되는 지점 주변도 지형도 상에서는 주로 밭과 과수원이 전개되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극북은 서광동리와의 접경지구인데, 서광동리 쪽에서 보면 남서쪽에 해당된다. 이 지점은 95번 국도가 서광동리에서 덕수리로 연결되는 지점으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지형도 상에서 보면, 극북지점의 주변은 주로 밭이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방산 덕수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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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

덕수리의 공간적 범위는 동서방향보다도 남북방향으로 길게 형성돼 있는 특징을 보인다. 그런 이유로 해발고도의 차는 비교적 크게 나타난다. 해발고도로 가장 높은 곳은 마을의 북쪽지구로 180-190m 정도를 보이고, 가장 낮은 곳은 마을의 남쪽지구인 12번 국도 주변으로 약 60-65m 정도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을의 중심부(리사무소가 위치하는 주변 지구)라 할 수 있는 지구는 약 70-80m 사이의 해발고도를 보인다. 이처럼 덕수리는 전체적으로 남북쪽 지구의 해발고도의 차가 크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쪽에서 남쪽지구까지가 급하지 않고 아주 완만하면서도 평탄한 지형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마을주민들의 생활면에서는 그리 불편한 점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가옥들이 입지해 있는 마을 내 이곳저곳을 답사해 보면, 지형적으로 실생활에 불리한 고지나 험지는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마을 동쪽에 위치하는 공동목장지구는 ‘곶자왈’ 지대라고 불리는 다소 특이한 지형을 보인다. 곶자왈 지대가 펼쳐지는 남쪽 일부지구에는 현재 제주조각공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나머지는 일부 초지와 숲지대로 남아있다. 이 곶자왈 지대는 덕수리 뿐만 아니라 서광동리, 상창리 및 화순리 등의 지역에 넓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안덕면 지역 전체의 독특한 지형적 요소로 주목할만 하다. 결국, 덕수리의 북동쪽-남동쪽을 잇는 지구는 부분적으로 개발되기는 했지만, 곶자왈 지대라는 독특한 지형이 잔존하고 있어서,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덕수리는 동부락(동동), 서부락(서동) 및 상부락(도련동) 등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자연마을 내에서 가옥들이 주로 밀집하는 지구는 대략 동부락이 65-80m, 서부락이 65- 75m, 상부락이 90-100m 사이로 확인된다. 그리고 이들 3개 자연마을을 형성하는 공간적인 범위 안에는 오름(기생화산)이나 하천 등 가옥의 밀집을 저해하는 지형적인 요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마을내의 주요 도로를 따라서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덕수리는 원래 남북쪽 지구보다는 동서쪽 지구의 평탄한 지형적 조건을 배경으로 하여 설촌된 마을이라 할 수 있으며, 북쪽지구의 상부락은 동부락과 서부락이 만들어진 이후에 새롭게 탄생한 자연마을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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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의 특징

제주도에 분포하는 토양은 대부분이 전형적인 화산회토라 할 수 있는데, 토양의 주된 모재는 현무암이며 일부가 조면암과 조면암질 안산암이다. 제주도의 토양은 일반적으로 토색(soil color)에 의해 암갈색토, 농암갈색토, 흑색토 및 갈색삼림토로 구분하는데, 이들 중에서도 암갈색토는 비화산회토이고, 나머지 3개 토양은 화산회토로 구분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비화산회토인 암갈색토를 속칭 ‘관땅’이라 하고, 후자에 속하는 3개 토양을 속칭 ‘뜬땅’이라 하여 구분한다. 물론, 농업생산력은 비화산회토인 암갈색토가 절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암갈색토는 다시 27개통, 농암갈색토는 14개통, 흑색토는 16개통 그리고 갈색삼림토는 6개통의 토양으로 세분할 수 있다. 이들 토양의 분포지역은 27개통으로 구성된 암갈색토가 제주시, 조천읍,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 및 대정읍 등 주로 북부와 서부지역의 해발 200m 이하의 해안지대에 분포하고, 가장 넓은 분포면적을 보이는 농암갈색토는 동부지역을 제외한 중산간 지대 전역과 남부 지역 대부분의 해안지대, 그리고 동부지역의 일부 해안지대로 나타난다. 또 흑색토는 구좌읍과 성산읍, 표선면 등 동부지역의 중산간 지대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갈색삼림토는 해발고도 700m 이상의 한라산 주변 산악지대에 주로 나타난다. 덕수리에는 이상에서 구분한 4개의 대표토양 중 농암갈색토가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농암갈색토는 화산회토에 속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토심은 깊지만 표층토가 푸슬푸슬하고 토양용적밀도가 매우 낮아 다공질이며, 또한 입자가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의한 침식률이 높게 나타난다. 나아가 토양의 구조발달이 미약하고 토양 미생물의 분해작용을 억제시키는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암갈색토에 비하면 비옥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덕수리에 분포하는 밭의 자갈 함유량을 살펴보면, 자갈이 있는 밭은 498㏊ 중에서 약 242㏊ (48.6%), 자갈이 없는 밭은 256㏊(51.4%)로 나타난다. 마을주민들과의 청취조사에서는 덕수리의 밭은 화산회토로서 비교적 자갈이 많은 편이지만, 인접하는 서귀포시 쪽의 밭들보다는 낫다는 말을 자주 접하였다. 제주도에서는 모든 경지의 자갈 함유량이 생산력의 고저를 판가름하는 바로미터(barometer)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배수면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유효토심도 전체면적의 약 66.9%(333㏊)가 50-100㎝ 사이로 비교적 깊은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덕수리의 토양은 일반적인 밭농사를 짓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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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

덕수리의 식생상태는 덕수리 내의 주요 토지이용 실태를 보면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덕수리의 주된 토지이용은 마을의 중심지인 서부락과 동부락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쪽 지구, 그리고 일부 북쪽 지구에 밭이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초지와 임야는 주로 상부락의 북쪽지구에 편중적으로 분포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인공적인 농작물 재배지구와 반자연적인 초지 또는 임야지구와의 분포실태는 다소 대비되어 나타난다. 나아가 덕수리 마을 동쪽지구와 화순리 및 상창리가 만나는 지구에는 비교적 잘 보존된 숲지구가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구는 바로 상창–화순곶자왈 지대로 큰병악과 작은병악 부근에서 시작하여 산방산 부근까지 약 9㎞에 이르는 구간으로, 제주도 내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수종들이 잘 보전돼 있는 곳이다. 이 지구에는 소나무, 삼나무, 때죽나무, 개서나무, 까치박달, 상산나무, 붓순나무, 참꽃나무, 꾸지뽕나무, 예덕나무, 산딸나무, 참식나무, 보리수나무, 종가시나무, 조록나무, 식나무 등 상록활엽수림과 낙엽활엽수림들이 잘 발달된 식생구조를 보여준다. 또한 이들 큰나무들 주변에는 십자고사리, 쇠고비, 쇳바위수국, 방울꽃, 맥문동, 사철란, 새우란, 담쟁이덩굴, 으름덩굴, 송악 등 키 작은 꽃과 덩굴류 등이 일정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덕수리와 화순리를 연결하는 해발고도가 낮은 남쪽지구에는 자연 초지가 발달돼 있으며, 일부는 공동목장 용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공동목장 용지로서의 기능이 상당히 떨어지다 보니, 목장용지 안에도 다양한 잡초들이 뿌리를 내림에 따라, 초지로 조성되었던 목장지구내의 식생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편, 마을 안에서는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정자목으로 사용하는 팽나무를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특이하게도 후박나무를 정자목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볼 수 있다. 또한 일반 경작지로 사용하는 주변부의 임야에서는 소나무들이 우점하는 식생실태도 확인할 수 있다. 덕수리의 식생과 관련하여 한가지 덧붙여야 할 것은 감귤을 재배하는 과수원에는 거의 대부분이 바람막이용으로 ‘숙대낭(삼나무)’을 심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덕수리의 주변부에는 과수원이 많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목이 풍부하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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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의 봉천수 실태

현대식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인 197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덕수리와 같은 중산간 지역의 마을에서는 주로 봉천수(奉天水)에 의존하여 식수나 그 외의 생활용수를 얻어왔다. 이러한 상황은 같은 안덕면 관내의 중산간 마을인 서광서리, 서광동리, 동광리, 상창리 및 상천리는 물론이고, 제주도내의 또다른 중산간 마을의 경우도 대부분은 마찬가지였다. 중산간 지역의 취수사정은 용천수가 분포하는 해안지역에 비하면 수량이나 수질면에서 훨씬 열악했던 것이다. 중산간 지역의 여러 마을에서는 물론 봉천수 외에도 마을 옆에 하천이 있으면, 하천수를 이용하기도 하고 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웅덩이(연못)의 물, 더 나아가서는 나무에다가 ‘새(띠, 茅)’로 여성의 뒷머리 모양처럼 엮어 만든 것을 매달아서 얻어낸 ‘물’도 생활 속에서 아주 긴요하게 활용해 왔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만든 봉천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산간 지역의 마을에서는 물을 얻기 위한 장소의 선정이나 봉천수 시설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중요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산간 지역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식수가 필요하고 목욕이나 빨래하는 물도 필요하며, 또한 가축들의 마실 물도 필요했다. 따라서 봉천수의 시설도 가뭄이나 위급시를 대비하여 여러 군데 조성하여 대비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중산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물을 얻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덕수리에는 많은 봉천수가 존재하고 있었으나, 정확하게 모두 몇 개였는지는 확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 이유는 과거에 사용하던 봉천수가 어느 날 한시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하나씩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봉천수는 반드시 식수용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마을에 따라서는 마을 안에 위치하면서도 규모가 아주 작은 것은 여름철에 목욕용으로도 사용하기도 하고 또는 빨래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3개의 자연 마을별로 사용하는 봉천수가 있었는가 하면, 군물과 같이 가뭄이나 마을 근처의 봉천수가 바닥을 드러낼 경우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봉천수도 있었다. 특히, 사계리 지경의 군물은 동부락, 서부락 및 상부락 등 모든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봉천수였는데, 가뭄이나 갈수기에 자연 마을별로 가까운 봉천수의 물을 다 사용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물 길러 가는 곳이 군물이었다. 만약 군물도 거의 바닥을 드러낼 정도가 되면, 덕수리 주민들은 화순리나 사계리의 해안의 용천수를 사용하였다. 화순리와 사계리 해안까지는 마을 중심부에서 약 2㎞ 정도의 거리였는데, 당시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집집마다 여성들이 상당히 고생을 했다고 한다. 과거 1970년대 초반까지 사용하던 여러 개의 봉천수들은 현재 곶바구리물, 흘왓, 군물 등 일부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며, 나머지 봉천수는 도로를 넓히거나 주변지역의 정리와 문화주택 부지 등으로 매립되어 사라져 버렸다. 덕수리에 수돗물이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1968년 어승생 수원지의 물을 이용하여 마을 내에 공동수도가 생기면서부터이다. 그리고 1972년에 상부락 쪽에 지하수 심정굴착이 성공하면서 봉천수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봉천수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1970년대 중반 경부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봉천수의 조성은 마을주민들 모두가 매우 협동적이면서도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축조되었다. 축조할 봉천수의 위치를 선정하면, 마을주민들이 총동원되어 진흙과 돌을 운반하여 바닥에 깔고 탄탄하게 다졌다. 특히 바닥에는 진흙을 두껍게 깔아 다졌는데, 어느 정도의 두께를 유지하는 수준까지 깔고 다졌다. 진흙을 두껍고 탄탄하게 다지지 않으면, 쉽게 물이 빠져버려 오랫동안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봉천수 내의 한 쪽에는 돌로 ‘물허벅(물을 길어 나르는 옹기)’을 내려놓고 짊어질 때 편하도록 ‘물팡’시설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봉천수 주위를 돌담을 쌓아 물을 보호하는 한편 사람이나 가축이 빠지는 것을 예방하였다.



물탱크 덕수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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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의 기후 특징

서귀포의 기후요소에 대한 특징을 한라산 북쪽지역이면서 안덕면의 반대편이라 할 수 있는 고산 지역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고산의 기온은 0.7℃가 낮고, 강수량에서는 무려 756㎜나 적게 나타난다. 그리고 상대습도는 5.8%가 높고, 일조시간은 1.5시간이 적으며, 풍속에서는 3.8㎧가 높게 나타난다. 이로 볼 때, 서귀포와 고산은 생활환경이나 농업경제활동 등에서도 많은 차이가 나타날 수 있는 기후특성을 보이고 있다. 서귀포와 가까운 거리에 인접하고 있는 덕수리도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다는 점을 신중히 고려하면 기후요소 별로 다소 차이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발행되는 자료에 의존하는 한 덕수리도 서귀포와 거의 비슷한 기후환경을 지닌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덕수리는 바람이 조금 많은 편이고, 겨울철 기온이 서귀포 중심부와 비교하면 다소 낮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밀감 꽃이 피는 시기도 서귀포 중심부에 비하면 1주일 정도 늦다고 하였다. 이처럼 마을주민들만이 평소에 체감하는 기후요소별 특징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덕수리의 경우는 사계리와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산방산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때때로 돌풍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또 급격한 기류상승 때문에 주변에는 안개가 자주 낀다는 주민들의 설명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산방산 주변의 밭에서 수확한 보리를 그 주변에서는 말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덕수리 사람들의 모듬살이

덕수리의 마을형성과 주민들의 인식상황

덕수리는 동부락에 위치한 속칭 ‘곶바구리(꽃바구니를 의미하는 지명)’ 일대에 김해 김씨, 진주 강씨 및 남평 문씨 등이 먼저 들어오고, 그 후에 송씨, 양씨, 이씨, 윤씨, 박씨 및 고씨 등의 씨족들이 들어오면서 마을다운 형태를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더불어 김씨를 비롯한 일부 씨족들이 ‘곶바구리’ 일대에 처음 들어온 것은 대략 400여 년 전의 일로 주민들은 인식하고 있다. 덕수리의 옛 이름은 ‘쇄당’ 또는 ‘새당’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은 이미 오창명의 연구(1998)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쇄당’과 ‘새당’으로 불리던 덕수리는 19세기 말에 이르러 현재의 ‘덕수리’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덕수리의 앞전 이름인 ‘쇄당’ 혹은 ‘새당’이란 마을도 18세기 중반 경에 ‘금물로리(금을질을)’에서 분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금물로리’는 지금의 사계리를 가리킨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덕수리사무소에 보관중인 『속명의록언해』에는 현재의 덕수리가 ‘금물로리’에서 ‘자단리’로 되었다가 ‘자단리’에서 ‘새당’으로 바뀌었고, 다시 ‘새당’에서 ‘덕수리’로 변화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자단리’는 지금의 서광리와 동광리를 합하여 일컫던 마을 이름이다. 나아가 현재의 덕수리라는 이름으로 개칭된 시점은 1840년(헌종 6년)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에 따른 해석을 전제로 한다면, 현재의 덕수리는 도로를 끼고 아랫마을이었던 사계리와 하나였다가 분리되었고, 또 윗마을인 서광리와 동광리와도 한마을이었다가 행정구역과 이름이 바뀌면서 독립하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오늘날 덕수리는 동부락, 서부락 및 상부락(도련동) 등 3개 자연마을로 구성되고 있는데, 역사적 기록이나 구전 등을 종합해 볼 때, 사람들의 거주지의 확산은 동부락(곶바구리 일대) → 서부락 → 상부락 순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을의 중심세는 과거에는 먼저 가옥들이 집단화된 동부락에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마을회관을 비롯하여 덕수초등학교, 경로당 및 마을금고 등 마을내의 주요 기관들이 입지하고 있는 서부락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대략 20세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시점에서 마을의 중심세가 동부락에서 서부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여진다. 나아가 오늘날 덕수리의 3개 자연마을에는 20여 개의 성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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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의 인구동향

덕수리는 중산간 지역에 위치하는 농촌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인구수나 세대수는 제주시나 서귀포시의 특정동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덕수리의 인구 통계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자료는 1904년에 발행된 『삼군호구가간총책』이라는 고문헌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1904년 덕수리에는 연가가 161호 있었으며, 인구는 남자가 244명, 여자가 306명으로 합계 550명이 거주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덕수리는 대정군 중면에 속해 있었는데, 중면은 덕수리를 포함하여 10개의 마을로 구성되고 있었고 10개 마을의 전체 인구는 4,716명이었다. 그러므로 덕수리 인구는 중면 전체 인구에서 11.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덕수리는 중면 내에서도 창천리(1,245명), 사계리(820명)에 이어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마을이었다. 오늘날 면소재지인 화순리는 495명으로 광청리(현 서광리, 538명)에 이어서 5위에 랭크돼 있었다. 덕수리는 중산간 마을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100여 년 전의 인구 통계로 보더라도 안덕면에서는 견실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던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여 년이 지난 1928년 시점의 덕수리 인구는 1,146명(남자: 549명, 여자: 597명)으로 1904년 시점의 인구와 비교하면 2배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기간에는 덕수리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마을에서 인구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이기는 하나 제주사회가 인구감소를 동반하는 전쟁이나 큰 내란 없이 매우 안정화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다시 2005년 12월 시점의 덕수리 인구는 1,009명으로 확인된다. 앞서 제시한 1928년의 인구 통계와 비교하면, 무려 77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구는 137명이나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러나 덕수리의 인구는 그동안 전혀 증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한국사회가 본격적인 경제성장기를 맞이하기 직전 단계인 1965년 시점의 덕수리 인구는 1,507명으로 2005년 시점에 비하면 거의 500여 명 정도가 많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덕수리의 인구는 1965년 이후부터 계속해서 감소하는 상황을 맞고 있는데, 가령 감소수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1972년 1,325명, 1982년 1,322명, 1993년 1,112명, 2003년 1,016명 등으로 나타나며, 최근 2005년 시점에서는 드디어 1,000명 이하로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1965년 시점의 인구를 100으로 본 지수에서는 2005년 인구가 67로 나타날 정도로 감소율은 크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구감소 현상은 비단 덕수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덕수리가 속해 있는 안덕면의 전체 인구를 보더라도 동일한 감소추세가 인정된다. 다시 말해, 안덕면의 전체 인구는 1965년 14,663명에서 시작하여 1976년 12,469명, 1986년 11,296명, 1995년 11,066명, 2005년 10,418명 등과 같이 해를 거듭하는 동안 지속적인 감소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덕수리와 동일한 방법을 적용하여 안덕면의 전체 인구를 1965년=100으로 보면, 2005년 시점은 71로 나타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큰 폭으로 인구감소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을 결혼잔치 빙떡굽기 덕수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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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의 도로와 교통

12번 국도는 덕수리와 사계리를 경계짓는 지표 기능을 하면서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안덕면 내에서는 12번 국도가 동쪽의 창천리에서 서쪽의 덕수리 구간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그 연장길이는 약 10.4㎞이고 이중 왕복 2차선 구간이 8㎞, 또 4차선 구간이 2.4㎞이다. 그리고 앞으로 8㎞ 구간도 2008년까지는 왕복 4차선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와 같이 12번 국도의 확장은 국도로서의 역할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2번 국도는 덕수리 주민들은 물론이고 안덕면 내의 여러 마을주민이나 제주도민들의 실생활에 있어서는 젖줄과 같은 생명선 구실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제주도를 동과 서로 나누며 방문하는 여러 관광객들에게는 어느 구간이 됐던지 간에, 일시적으로라도 12번 국도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흡족한 관광활동을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덕수리 주민들은 화순리를 경유하여 서귀포 방면(서귀포시 중심부)이나 인성리를 경유하여 모슬포(대정) 방면(해안가, 포구)으로 생활용품이나 수산물 등을 구입할 때 비교적 많이 사용하는 도로라 할 수 있다. 16번 국도는 덕수리 마을안을 관통하지는 않으나, 안덕면 관내에서 보면 마을 북동쪽의 상창리와 서광서리 구간(9.6㎞) 사이에 연결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문과 서귀포 방면으로, 서쪽으로는 대정읍 보성리와 무릉리를 거쳐 한경면과 한림읍 방면으로 이어진다. 16번 국도도 덕수리 주민들에게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도로 중 하나이다. 동서지구에 위치하는 이웃마을(상창리, 서광동리 및 서광서리 등)이나 마을의 북쪽지구에서 농업활동을 하는 경우에 많이 이용하는 도로라 할 수 있다. 이 16번 국도에는 31번, 33번 및 39번 군도가 덕수리를 관통하는 형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접근하는 데도 별반 문제가 없다. 또 16번 국도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히려 12번 국도보다도 훨씬 이용도가 높은 도로였다고 할 수 있다. 95번 국도인 서부관광도로(평화로)는 제주시와 대정읍 인성리를 연결하는 도로로서 2001년 8월 국가지원지방도에서 국도로 승격된 도로이다. 지방도 단계에서 4차선 확장공사가 마무리되면서 국도로 승격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제주시 지역과 남서부 지역을 연결하며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는 도로로 격상되었다. 덕수리 주민들의 경우도 일상생활에서 95번 국도를 이용하는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제주시 중심부를 포함하여 애월이나 한림 방면으로 용무를 보러 다니거나 나들이하는 경우에도 많이 사용하는 도로가 되고 있다. 나아가 ‘서부관광도로'라는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들에게는 제주시에서 남서부 지역의 관광지를 찾아가는 경우에 많이 활용되는 도로이기도 하다. 95번 국도의 중간 중간에는, 서귀포 방면으로부터는 16번 국도와 1117번 지방도(산북 쪽 산록도로)가, 제주시 방면에서는 1115번 지방도(산남쪽 산록도로)가, 그리고 한림 방면 쪽에서는 1116번 지방도(한창로)와 교차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기능적 측면이나 활용적 측면에서의 위상은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군도인 31번, 33번, 39번, 37번 도로는 덕수리 안을 관통하거나 마을내의 한 구간을 연결하는 형태로 뻗어있다. 이들 군도 중에서도 31번 도로는 덕수리 서쪽지구를 남북으로 잇는 도로로서 북서쪽의 16번 국도에서 분기하여 덕수리를 지나 사계리까지 이어지며 사계리 안에서는 12번 국도에서 분기된 8번 군도와 만난다. 말하자면, 덕수리에서 산방산 정남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33번 군도는 덕수리의 동쪽지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도로로서 남쪽지구에서는 산방산 서쪽 편에서 31번과 교차하여 사계리 지경의 8번 도로와 연결되고, 북쪽지구에서는 16번 국도와 교차하여 화순리에서 뻗어 나온 73번 군도와 만난다. 31번이나 33번 도로가 모두 덕수리의 서부락과 동부락의 중심부를 지나서 다른 국도나 군도를 만나게 돼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활용도가 가장 높은 도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주시나 서귀포시로 간다거나 포구가 위치하는 모슬포 혹은 송악산 부근의 해안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두 도로는 반드시 일정구간을 사용해야만 필요로 하는 연결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8번 군도는 화순리 상모리 구간을 연결하는 도로로 총 연장은 6.9㎞이다. 특히, 이 군도는 사계리 동쪽의 12번 국도에서 산방산 남쪽을 끼고 사계리 마을을 지난 다음, 대정읍 상모리까지 이어지는데 화순리와 사계리 지경에서 해안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도로이다. 39번 군도는 덕수리 북서쪽의 31번 군도에서 분기하여 덕수리 북쪽지구를 지나 남동쪽의 화순리 마을의 중심지까지 연결되는 도로이다. 또한 덕수리 안에서도 상부락 보다도 훨씬 더 북쪽지구를 지나는 도로인 데다가 주변지구가 들과 밭이 전개되는 지구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농업활동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되는 도로라 할 수 있다. 37번 군도는 북쪽의 95번 국도에서 분기하여 덕수리의 북동쪽 지구를 지난 다음, 화순리를 거쳐 감산리와 창천리로 이어지는 도로이며 중간 지점에서는 12번 국도와도 교차한다. 덕수리 입장에서 보면, 37번 군도는 북동쪽의 화순리와의 경계지점에서 지극히 일부구간만이 지나고 있기 때문에, 이용의 중심은 화순리 주민들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을버스 정류장 덕수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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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 경제활동의 이모저모

덕수리의 경제활동은 주로 상업(도소매업), 서비스업(숙박업 및 음식점업), 농업 및 목축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대부분의 마을주민들이 전념하고 있는 것은 농업부문이며, 농업부문에서도 거의 모든 농가가 감귤과 감자재배에 치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먼저 덕수리의 업종별 사업체의 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2005년 12월 현재 덕수리의 총 사업체 수는 31개로 확인된다. 이 사업체 수는 덕수리가 중산간 지역의 마을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치다. 업종별로 사업체 수를 보면, 운수업이 8개로 가장 많고 뒤를 이어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이 각각 6개로 많게 나타난다. 그 외에는 제조업과 기타 개인서비스업이 각 3개씩, 교육서비스업이 2개이며, 나머지 농·임업, 공공·사회복지사업, 오락·문화·운동사업이 각 1개씩이다. 이와 같이 업종별 사업체 수는 역설적으로 덕수리의 주민들 대부분이 농업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덕수리와는 반대로 해안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화순리와 사계리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업체가 입지하고 있다. 즉 화순리에는 196개, 사계리에는 136개의 사업체가 입지함으로써, 화순리는 덕수리의 6.3배, 사계리는 덕수리의 4.4배가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특히 화순리와 사계리의 경우는 해안지역에 위치하는 입지적 특성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많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소매업 또는 숙박 및 음식점업이 압도적으로 많게 나타나고 있다. 덕수리에 자리를 틀고 있는 사업체 수는 총 31개로서 평범한 다른 농어촌마을이나 중산간 마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운수업을 비롯한 숙박 및 음식점업, 도소매업체 수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음은 덕수리도 점점 과거의 농촌마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변화의 물결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제주도의 경우는 대기업체나 공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타지방에 비하여 직업선택의 폭이 매우 좁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을주민들이 농·목축업이나 수산업 등 1차 산업과 관련된 경제활동을 벗어나는 직업 선택에는 상당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안덕면 내의 다른 마을에서도 도소매업이나 숙박 및 음식점업, 운수업 등에 많은 비중이 쏠려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농·목축업 활동에 대하여 검토해 보기로 한다. 먼저 농업활동과 관련하여 덕수리의 농가수를 살펴보면, 2005년 전체 가구수인 366가구에서 농가수는 197호로 그 비율은 53.8%를 보인다. 농가수의 비율은 안덕면 내의 12개 마을 중에서도 상창리(59.2%)에 이어 2위에 랭크될 정도로 농업활동이 활발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농가수의 비율에서 보면, 안덕면 내에서도 비교적 중산간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상창리, 덕수리, 창천리(53.6%), 서광동리(52.7%), 광평리(45.8%) 등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서, 결국 마을의 위치와 농업에의 의존도가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업에 이어서 목축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덕수리의 목축업과 관련되는 가축은 1970년대 말까지도 소, 돼지, 염소, 닭 등 비교적 다양한 편이었으나, 현재는 목축업이라고 할 정도의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다. 조사시점에서는 겨우 5농가에서 육우와 번식우 등 약 40여 두를 사육하고 있을 정도로 위축돼 있는 상태이며, 그나마 소를 가장 많이 사육하는 독농가는 20여 두 정도의 규모였다. 생활용품은 안덕면 관내의 화순리와 대정읍에 위치한 모슬포로 크게 나뉜다. 대략적으로 화순리 쪽을 약 30%의 가구들이 의존한다면, 모슬포 쪽에는 약 70% 정도의 가구들이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모슬포 쪽이 생활용품을 구입할 수 있는 구입처도 여러 군데가 있고, 나아가 생활용품 외에도 농산물과 수산물 등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집안에 상을 당하거나 결혼식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는 두 곳도 아닌 제주시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용품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제주시가 비교적 먼 거리에 위치하고는 있지만, 먼 거리를 이동한 만큼 크게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