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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 민속지

주제 영광군 법성포
조사 법성포의 삶의 역사, 사진, 영상, 테마, PDF

석대권 대전보건대학교 교수

밥상에 올라온 맛-부엌 들여다보기



매일 매일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물음은 “오늘은 무얼 먹지?”이다.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직장인들은 물론 무엇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과제이다.
그러니 집에서 매일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하는 주부들의 고충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오늘은 어떤 걸 만들까’가 매일의 숙제이고 부담이다. 장에 가면 먹을거리가 넘쳐나는데도 무얼 사야할지 머릿속이 하애질 때도 있다. 그럴 때 남들은 무얼 해서 먹을까가 매우 궁금해진다.
지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메뉴를 검색하기도 한다. 다른 집의 부엌을 엿보는 것은 그래서 흥미로울 수 있다. 다른 집의 상에는 무엇이 올라올까. 어떤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까? 어떤 맛을 낼까? 상에 펼쳐진 음식들을 하나 하나 맛보는 것을 상상하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음식 맛을 내는 기본은 재료이다. 물론 같은 재료로도 손맛에 따라 다른 맛을 내지만 재료에 따라서 특색 있는 맛이 나타난다.
지금은 지역의 산물들이 전국으로 운송되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식재료가 특정한 지역에서만 소비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퍼져 있어 식재료 소비에 지역적 특색이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도 농촌 혹은 어촌 등의 지역에 따라 보관하고 있는 식재료들은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는 강원도 삼척시 갈남마을과 충청북도 보은군 사내리,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 그리고 제주도 서귀포시 덕수리에 위치한 어느 집의 부엌에 있는 식재료들을 살펴본다. 이 식재료들은 냉장고와 부엌에 위치한 것들로서 일정 시간 동안 보관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면 각 가정에서 많이 먹거나 즐겨먹는 것으로 대량으로 구입해서 두고 먹는 것이든지 혹은 자주 사용하는 것이라고 유추해 볼 때 각 가정의 먹을거리의 특색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강원도 삼척시 갈남마을에 위치한 어떤 가정의 부엌에서는 들깻잎 미역줄기, 율피가루, 계피가루, 가루팩, 감초, 멍게젓, 말린 미역, 말린 다시마, 말린 호박, 무시래기, 배추시래기, 고추씨, 청국장, 엿길금, 들깨가루, 표고버섯 말린것, 고추장아찌 등의 식재료가 보관되어 있다. 율피가루가 보관되어있는 것이 특이한데 율피는 밤껍질로서 한방에서는 율피를 삶은 물이 갈증을 해소해 주고 약에 체했을 때도 해독작용을 한다고 되어있다. 또 율피의 탄닌성분이 오래된 피지와 각질제거 및 모공 수축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고 하여 요즈음에는 마사지용으로도 많이 쓰안다. 율피가 가루로 있으니 이를 다려 먹었다기 보다는 미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식재료 중에 멍게젓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멍게젓은 바닷가에서 주로 먹던 음식으로 신선하게 멍게를 보관하기 위해 생겨났으며 향긋한 향기와 맛이 그대로 보존된다.


충청북도 보은군 사내리의 한 가정의 냉장고에는 도토리가루, 절편, 가래떡, 인절미, 홀떡, 절떡, 송이, 취나물, 뿡잎, 홑잎, 냉이, 시래기, 싸리버섯, 두릎, 표고, 수수팥떡, 새파란콩가루. 미숫가루, 노랑콩가루, 마늘장아찌, 고추장아찌, 머위장아찌, 어린깻잎장아찌, 무말랭이, 거죽나물장아찌, 머위장아찌, 송이버섯장아찌 등의 식재료가 있다. 이 지역은 산촌의 지역적 특징을 지닌 곳이라 도토리가루나 송이, 두릅, 취나물, 거죽나물, 머위 등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이 보이며 마늘장아찌, 고추장아찌 등 장아찌류가 많다. 장아찌는 식품을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저장식품인데 밥상에 장아찌류가 많이 올라온다는 것은 다른 찬류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염분의 섭취가 많을 수 있다. 수더분한 상차림의 그림이 떠오른다.
이 집은 특이하게 절편, 가래떡 등 떡류가 많이 보관되어있다. 떡은 간편하게 한 끼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이다. 그런데 떡이 한 두 종류가 아니다. 절편, 가래떡, 인절미, 홀떡, 절떡, 수수팥떡 등 6종류나 된다. 그것은 이 집 내외가 떡을 즐겨 먹고 있다는 말이다. 간편식으로뿐 만 아니라 간식으로도 먹었을 것이다.
뽕잎이나 홑잎 같은 것은 가까운 산에서 직접 채취한 것인데 홑잎은 화살나무의 새순을 뜯어 생것으로 무쳐 먹는다. 이 나물은 속설에 일년에 3번 먹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만치 새순이 빨리 나오고 빨리 커서 억세어지기까지 너무 빨리 자란다는 뜻이다. 산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나물이다. 뽕잎은 예전에는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지만 요즈음 그 효능이 알려지면서 대중화된 식재료이다. 잎이 4~5개 나왔을 때 따야 부드럽게 먹을 수 있어서 채취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뽕잎은 뽕잎차도 만들고 장아찌도 담그며 밥을 할 때 넣기도 한다. 뽕잎이나 홑잎을 따는 아낙의 수고로움이 향기롭고 부드러운 봄나물 무침의 양념으로 배어있는 듯하다.


전남 영광군 법성포 한 가정의 부엌에는 고사리, 파래, 영지버섯, 녹두, 갈치, 고등어, 굴비 등이 보관되어있다. 바닷가의 마을이라서 그런지 갈치, 고등어, 굴비 등의 생선과 파래 보관되어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고려 때 이자겸이 법성포로 유배 와서 왕에게 ‘굴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굴비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지는 법성포 굴비는 진상품으로 사용될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서귀포시 덕수리의 부엌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담금술들이다. 오가피술, 구기자술, 머루술, 삼동술, 오갈피술, 안동초술, 마늘술, 청머루술, 유자술, 지네술 등 재료도 다양한 술들이 있다. 담금술은 약적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개봉을 하는 날이면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함께 나누어 마시며 건강을 기원하곤 한다. 예전에는 집에서 청주, 소주류 등을 직접 담아 주안상을 차려 손님을 접대했는데 지금은 몸에 좋은 약재로 담금술을 만들어놓고 귀한 손님이 오면 내어놓는다.


여러 가정의 부엌의 먹을거리들을 엿보았다. 어촌이나 산촌 등의 지역 특징에 따라 먹을거리에 차이가 있고 또 집집마다 특별한 식재료를 준비해놓고 있지만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주부의 마음은 하나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