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곡리, 음식에 대한 추억
전동면 미곡리는 세종시 북쪽에 있는 농촌마을이다.
마을은 운주산에 포근히 안겨있고 조천이 그 앞을 지나가며 선물처럼 충적평야가 펼쳐진다.
미륵님이 지켜주는 평범한 농촌마을인 미곡리 주민들의 음식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인터뷰를 통해 정리해 보았다.
김지선(여86세)은
명절음식으로 설날에 먹던 두부와 흰떡가래(가래떡)에 대해 추억하였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설날 전에는 집집마다 두부를 만들고 흰떡가래를 뽑았었다.
흰떡가래는 추수한 쌀을 담그고 건져 나무절구에 빻아서 채에 쳐서 시루에 두 번 찐다. 떡을 절구에 쪄서 도마에 놓고 물 묻혀서 동글동글 밀어서 굳은 다음 썰어 흰떡국을 끓여 먹었다.
봄이 되면 쑥으로 해먹던 음식이 기억난다. 봄에 뜯은 쑥은 삶아서 볶은 콩가루 묻혀서 먹고 생으로 메밀가루나 쌀가루에 버무려 쪄서 먹었는데 쑥버무리라고 한다.
일제강정기와 6·25전쟁때 보릿고개(봄~보리 나기 전, 6월)에 먹었던 음식이다.
정갑영(여80세)은
일제강점기에 먹던 음식으로 콩깻묵밥에 대해 회상하였다.
일제가 주민들이 농사지은 벼를 가져가면 벼를 덤불 속에 숨겼다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 다 가져 가고 주민들에게는 썩은 콩깻묵을 주었다. 콩깻묵은 그냥 먹으면 쓰고 끈기가 없어서 하룻밤 물에 담가 건져서 수수나 여러 곡식을 섞어서 밥을 지어 먹었다.
나물밥, 콩깻묵밥, 서숙죽, 도토리밥, 도토리떡을 쌀밥 대신 먹고 전쟁통에는 그나마 있던 쌀은 숨겨 먹어야 했던 기막힌 사연들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국민핵교 2학년, 10살 때 해방됐어.
2학년 때 운동장에서 조회할 때 교장선생이 ‘아침에 뭐 먹었냐고 물어.’ 내가 손들고 밥은 못 먹고 밥 대신 나물 뜯어서 나물만 먹고 왔다고 일본말로 했더니, 쌀 닷 되, 보리쌀 닷 되, 운동화 한 켤레, 공책, 연필 줬어.
해방 전에는 배급 아니면 굶어 죽어. 다 가져가니까. 일본놈이 이장한테 보리쌀 몇 되, 쌀 몇되, 콩깻묵을 배급 주면 나눠줬어.
집집마다 줬는지 사람마다 줬는지 나는 어려서 기억이 안 나는데 콩깻묵밥은 우리 엄마가 해줘서 기억이 나....
해방 전후로 서숙죽과 도토리밥을 먹었어. 서숙죽은 조로 만든 죽으로 조당죽이라고도 해. 산에서 도토리, 상수리 있잖아? 주워와서 물에 불려 가루내서 도토리가루를 곡식으로 밥 지을 때 넣어 먹었어.
도토리가루랑 곡식가루 섞어서 떡도 해먹고...
6·25전쟁 때 피난가려면 베(벼)를 도랑물이나 연못에 가마니채로 넣거나 땅에 파묻어 보관했어. 피난 갔다 와서 먹으려고.
베는 물아 담가놓으면 싹 안나고 건져놓으면 싹나. 60년대까지 어려워서 고생했어. 그때 배급 줘서 좀 나아졌어.
박원규(남80세)는
6·25한국 전쟁 이후 먹던 음식으로 독사풀가루, 봄나물, 꽁보리밥에 대해 기억하였다.
논에서 독사풀 풀씨를 털어서 볶아서 멧돌에 갈아서 먹었는데 미숫가루처럼 사카린 탄 물에 먹었다고 한다.
봄이면 나물 캐서 먹고, 시커먼 꽁보리밥, 시커먼 된장국을 먹었다. 그래도 농사지으며 품앗이 하고 음식 나눠먹던 기억은 행복하게 남아있다.
논농사하다 여자 셋이 먹을 거 이고 나오면 애들 10명이 따라가는겨.
지금은 인심 박해. 옛날에는 모내기, 마당질(벼타작)이 잔치날, 생일날인겨. 일꾼들이 식구들 데려와서 밥먹고 가는겨.
정갑영(여 80세)은
봄놀이 가서 먹는 ‘가재 찌개’를 추억하였다.
큰골 계곡에서 봄에 가재를 잡아 고추장 넣고 가재찌개를 끓여서 병풍바위 밑에서 막걸리와 먹었다. 가재는 모닥불에 구워도 먹기도 했다.
정갑영은 모내기 전에 마을 사람들과 큰골에서 먹고 놀던 기억을 하며 먼저 떠난 남편 생각을 하였다.
음식은 추억이다.
오명희(여 64세)는
45년 전 미곡리에 시집왔을 때만 해도 정월대보름이면 집집마다 떡을 해먹었고 시루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내가 하는 떡보다 들어오는 떡이 더 많았다.
방앗간이 많지 않던 때라 집에서 떡을 해먹던 추억을 떠올렸다.
쌀을 방아에 쪄서 채에 받쳐서... 내가 열아홉살 때... 때마다 떡을 해 먹었어.
옛날에 떡시루로 떡 할 때 불 때던 사람이 중간에 화장실 가면 떡이 선다고(설익는다고) 했어.
조상님께 하는 거니 불경하다고 그런거 같아.
미곡리 주민들은 음식에 대한 기억은 단순히 음식 맛에 대한 기억이 아니었다.
음식을 통한 삶의 이야기로 아픔과 기쁨, 그리움과 회환이, 음식을 나눈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함께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