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 주민의 신발장 엿보기
한 사람이 평생 걷는 거리가 10만 5000㎞라고 하니, 신발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의 하나이다.
요즈음 신발은 모두 공장에서 찍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집에서 같은 신발을 신는 것은 아니다. 또 같은 신발 종류라고 해도 그 신발에는 개인의 처지와 삶이 묻어난다.
여기서 경북지역의 두 개의 마을에 사는 주민의 신발장의 신발을 통하여 그들의 삶의 궤적을 엿보려고 한다. 한 곳은 어촌에 사는 50대 부부의 신발장이고, 다른 한 곳은 전형적인 농촌에 사는 70대 노부부 신발장이다.
거의 어촌인 경북 영덕군 경정1리 뱃불마을에 사는 50대 부부는 딸 두 명과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는 평범한 부부이다. 자녀들은 직장생활로 떨어져 있지만, 집안 제사, 명절, 생신, 여름휴가 등에는 부모님을 찾는다고 한다.
이들의 신발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현관 좌측에 붙박이장 형태의 신발장이다. 내부에는 신발뿐 아니라 각종 공구 및 일할 때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장갑이 들어 있다. 이 외에 바닷일을 하기 위해 신는 고무장화들은 각종 작업복과 어구들이 있는 창고채에 있다.
현관 신발장에는 구두 11켤레, 단화 3켤레, 슬리퍼 4켤레, 운동화 5켤레, 샌들 2켤레와 구둣주걱, 깔창이 각각 1개씩 들어 있다.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구두는 부부가 모두 외출용으로 신는 것들이지만, 그렇게 자주 신는 것은 아니다. 자주 신지 않는 신발이 가장 많은 것을 보면 중년인 이들 부부가 외출할 때에 치장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고 생각된다.
구두 다음으로 많은 운동화는 5켤레로 이 중 4켤레는 서울과 군에 가 있는 아들, 딸의 운동화로 집에 오면 신는 것이다. 나머지 1켤레는 부인의 것이다.
단화는 3켤레로 부인과 두 딸의 것인데 사용 빈도가 그리 많지 않다. 샌들은 2켤레로 모두 딸이 신는 것으로 서울에서 집에 왔을 때 외출용으로 신는 것이다. 외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식들이 가끔 찾아오지만 그것을 위해 부모는 신발을 정리하고 보관한다. 신발장을 열 때마다 보이는 자식들의 신발을 보며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부부의 마음이 투영된다.
슬리퍼는 2켤레는 부인 것이고 나머지 2켤레는 남편과 아들 것이다. 아들 슬리퍼는 유명 스포츠브랜드 제품이며, 주로 봄부터 가을까지 신는다. 부부의 슬리퍼는 작업을 하지 않는 일상생활에 가장 많이 신는 일반적인 신발이다. 자식은 브랜드 신발을 신지만 부모는 보통 신발을 신는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다.
창고에 보관된 장화는 모두 4켤레로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그리고 노란 긴 장화가 있다. 아저씨 장화는 축산장에서, 아주머니 빨간 장화는 영해장에서 샀다. 이 분들은 사장을 주로 영해장과 축산장을 본다는 의미이다. 파란 장화는 여름철 새벽에 배탈 때나 새벽에 논에 물길을 볼 때 신고, 노란색 털장화는 겨울철에 배에 물을 부으러 다닐 때나, 미역 가지고 올 때 신는데, 부부가 공동으로 신기도 한다. 빨간색 털장화는 아주머니 겨울 장화다. 긴 노란 장화는 모내기 해 놓고 논에 갈 때 한 달 정도 신는다. 장화는 1년에 1-2컬레 정도 구입한다.
장화는 길어서 현관의 신발장에 들어가지 않기도 하지만 창고의 온갖 작업공구와 함께 비치되고 있어 노동의 한 면을 보여준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바다와 땅을 가리지 않고 일년 내내 노동하는 두 부부의 삶의 고단함이 장화에 있다. 특히 남녀를 가리지 않는 노동의 강도는 장화를 공동으로 신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음 농촌마을의 어느 노부부의 신발장을 한 번 엿보자.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에 사는 70대의 노부부는 평생 이 마을에 살면서 3남 1녀를 두었고, 자식들이 혼인하여 4명의 손자와 2명의 손녀, 외손녀 2명을 두고 있다. 자식들은 모두 외지에서 살고 노부부만 집을 지키고 있다.
이 노부부의 신발은 안채 바깥 처마 밑에 자리한 신발장에 보관되어 있다. 이 집은 1962년 노부부가 분가하면서 지은 농촌 한옥집이다. 이 시대는 신발장을 별도로 두는 것이 아니라 신발을 마루 밑에 그냥 벗어 두었다. 이 시대가 변화하여 이 집도 처마 밑에 이동식 신발장을 하나 두었다.
이 안에는 부부의 신발뿐만 아니라, 지식들과 손자, 손녀의 신발까지 들어있다. 자식들의 운동화는 주말이나 명절 때 집에 와서 밭일을 할 때 신으려고 둔 것이고, 손자와 손녀 신발은 집에 놀러왔다가 두고 간 것으로 신발장에 보관하고 있다. 손자 손녀는 날이 다르게 커가고 두고 간 신발은 작아져서 신을 수 없을 텐데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신발장에는 고무신 2켤레, 구두 4켤레, 운동화 6켤레, 슬리퍼 1켤레가 있다. 뱃불마을 부부와 다른 점은 연령에 따른 외부활동이 잦은 뱃불마을 부부는 외출용 구두가 많은 반면 외부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한밤마을 부부는 외출용 구두의 수량이 적다는 점이 눈에 띈다.
구두 4켤레 중 3켤레는 부인 것이며, 1켤레만 남편 것이다. 이들 구두는 외출용으로 신고 있다. 구두는 모두 가죽 소재의 구두이다.
신발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운동화는 6켤레인데 이중 부부가 신는 것은 4켤레이며 2켤레는 큰아들과 외손녀의 것으로 명절이나 주말에 내려오면 신는 것이다.
요즈음 보기 힘든 고무신이 부부가 각 1켤레씩 있다. 고무신은 밭이나 논에 일을 하러 갔다가 오는 길에 눈에 보이는 아무 물에 슬근슬근 흔들어서 툭툭 털어 신으면 그만인 그 편리함 때문에 할아버지는 아직도 고무신이 일을 할 때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농사에 단련된 일생을 엿볼 수 있는 신발이다.
슬리퍼는 가죽 소재의 앞이 막혀있고 뒤가 터 있는 형태로 원래 부인의 것이었으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공동으로 신는다. 부부가 함께 살면서 내남이 없이 그저 하나로 묶여진 무심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두 마을 주민의 신발장을 살짝 엿보니, 나이와 가족, 직업 등의 차이에 따라 신발들이 다르다. 하지만 자신은 시골 장터에서 구입한 신발을 신지만 자식은 브랜드가 있는 운동화를 사주고 신발장에 놓인 자식들과 손자녀들의 신발을 보면서 언제쯤 오려나 하는 기다림이, 객지에서 고생하지 않을까 하는 자식 걱정이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때로는 신발을 툭툭 치면서 신세타령의 대상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생업의 현장에서이든 외출을 나가며 뽐내고 싶을 때건, 마당에서 키우는 개에게 밥을 주러가건 그 쓰임새에 따라 장화, 구두, 운동화, 슬리퍼, 샌들 등으로 불리는 별개의 이름이 있을 뿐, 신발들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가까우며 익숙한 살림살이의 하나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